어렸을 땐 부쩍 장래희망이 자주 바뀌곤 한다. 공주, 왕자, 경찰, 승무원, 아나운서 등등 내가 어린 시절 꿈꿨었던 장래희망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수도 없이 많다. 유치원 때는 보통 '공주'와 '승무원'을 꿈꿨었다. 그 당시에 유행하던 쥬X 시리즈를 보며 예쁘고, 고고한 공주의 모습을 동경해서 꿈꾸었다고 구체적인 똘똘한 이유를 대고 싶지만, 그렇게 자세하게 분석하기에는 내 나이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그 당시에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고작 부설유치원에 다니는 내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몰래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로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 방학 때에도 유치원에 나와 블록 장난감을 갖고 놀은 것, 벌써 일찍이 안경을 쓴 친구에게 멋진 안경을 향해 눈을 빛내며 "넌 왜 벌써 안경을 써? 시력 몇이야?"하고 물어본 것 등등 아주 사소하고, 사소한 기억뿐이다. 그렇게 단순하고, 간단하고, 천진난만했던 내가 공주를 좋아했던 이유가 뭐 얼마나 거창하겠는가. 그냥 딱 화면을 봤을 때 예쁘고, 멋지고, 강하니까 좋아했던 거다.
승무원도 공주와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친언니가 그린 김연아 선수의 그림을 보고 말끔하게 묶어 올린 똥머리에 한참 빠졌어서 내가 빠졌고, 좋아했었던 똥머리를 한 승무원을 좋아했을 뿐이다. 정말 단순한 이유지만 이런 이유들은 나를 공상의 나라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 승무원 복으로 갈아입고, 손님들을 응대하고, 진상 손님들을 만나면 '죄송하지만, 손님을 태운 이 비행기는 출항하지 않습니다, 나가주십시오' 라며 서투른 대처를 하는 상상을 했다. 똥머리를 말끔하게 묶어 올리고, 키는 다른 사람이 올려다볼 만큼 크고, 당당한 표정을 짓는 '나'도 떠올리며 나는 매일매일을 발그레 웃으면서 보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가서는 공주라는 꿈을 가졌던 게 부끄럽고, 우스워졌다. 친구들에게 “나 예전 꿈이 공주였다?”하고 깔깔깔 웃으며 개그 소재로 소비하기도 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첫 번째 꿈을 포기했다. 그리고 승무원은 좀 다른 경우다. 여전히 멋있다고 생각했어서 한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는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승무원이 되려면 키가 165cm는 넘어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나의 키는 고작 133cm 즈음이었는데 말이다. 사실, 그때 나는 아직 성장판이 확 열려있었을 시기였고, 지금 키가 작다고 해서 나중까지 쭉 작을 거란 확신은 없지만, 그 말을 듣고 바로 포기한 것을 보면 승무원이 되고픈 내 열망이 그리 크기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난 이 두 개의 장래희망을 이른 시기에 포기하고, 한참을 돈 많은 백수를 꿈꾸며 지내다 외교관이라는 꿈을 또 꿈꾸었다. 한 유명 대학교에서 하는 강연을 들으러 갔었는데, 거기에 있었던 외교관 분 한 분이 무지막지하게 멋져서 동경심에 외교관이라는 장래희망을 갖게 되었다. 영어 실력을 늘리려 일부러 미국 애니메이션도 보고, 엄마에게 영어 학원에 보내달라며 조르기도 하고, 원어민과 대화할 수 있는 앱을 깔아서 하루에 기본 20분씩 소통도 해보고, 단어도 무작정 다 외워보기도 했더니 어느 정도의 영어 회화는 가능해졌고,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 보는 시험 문제를 미리 풀어보면서 공부했다. 나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고, 조금 자만했었다. 나만큼 열심히 하는 애는 없을 거라고. 나만큼 노력하는 애는 없을 거라고.
그래서인지 세상에는 나보다 노력을 더 하면 더했지 덜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유독 아팠다. 더 많은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니 잘하는 애들이 정말 너무하게 많았다. 나는 꼭 한 문제 씩은 틀리던 수학을 식은 죽 먹기라는 듯 100점 시험지를 내보이는 아이들, 소심하고 조용하고 숫기 없는 나의 성격을 한 번도 부끄럽게 여겨본 적 없었는데 그런 내 성격을 내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하게 만드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더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바로 조용한 열등감에 휩싸인 나와는 달리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에게 다가가 ‘너 정말 잘한다!’하고 말할 줄 아는 아이들.내가 3번째 꿈을 포기한 이유는 이런 점에서 있다. 주변인들이 너무 잘났기 때문에. 나는 이들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서.
그 후에도 나는 다양한 꿈을 꿨지만 나는 모두 다 포기했다. 건축가가 되고 싶은데 나는 수학을 못하니까 포기하자. 심리학자가 되고 싶은데 나는 분석을 못하니까 포기하자. 어렸을 때는 꿈을 꾸기만 하고, 적당한 노력만 하면 다 이루어지는 줄 알고 분수도 모르고 다양한 꿈을 꿨는데 나는 눈물을 흘릴 만큼 좋아하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남들 모두가 감탄할 만큼의 재능을 타고난 일도 없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애매했다. 나는 너무 애매한 얼굴이었고, 너무 키가 작아서 애매했고, 죽일듯한 노력을 하기에는 애매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거라는 다짐을 하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낼 만큼 열심히 하기에는 애매한 사람이었다. 이 생각을 한 뒤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투루 보냈을까? 옛날 같았으면 학교에 오자마자 책을 읽거나 영어 공부를 했을 텐데, 그때는 핸드폰을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싫어 게으름을 피우고, 하루 종일 책 한 권도 안 읽고 문제집 한 문제도 안 풀고 그대로 잠자리에 드는 날이 수두룩해졌다.
나는 생각했다. 아, 사람이 이렇게 의욕이 사라지는구나. 사람이 이렇게 무기력해지는구나. 차라리 공주라는 헛되고 우스운 꿈을 꿨었던 유치원 때가 낫네.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현실을 너무 버거운데, 이 버거운 현실에 미래라는 낯선 개념이 들이닥쳤다. 지금은 어떻게 무엇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다른 애들은 각자의 꿈을 갖고 자사고며, 과학고며 여러 명문고에 진학하려고 이렇게 이른 때에도 노력하는데 나는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데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딱 여러 의문점이 들었던 시기에 학교에서 한 강연을 들었는데 그 강연 내용은 이러했다. 살다 보면 딱 가슴이 쿵. 하고 울리고 내려앉는 순간이 올 거라고. 그만큼 좋아하는 일이 마음이 울리는 일이 생길 거라고. 그러니까 많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속이 울렁거리면서 눈물이 핑 하고 돋았다. 물론,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고, 그냥 살짝 울컥할 만큼의 감동이었지만 위로가 됐다.
그래, 언젠가는 내 마음을 울리고 가슴이 뛰는 일을 찾게 될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나중에 내가 남들이 보기에 쪽팔리고, 조건이 안 맞는 직업이고, 다른 이들보다 내가 부족하고, 뒤처지더라도 다 상관 없어질 만큼 좋아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 방해가 되고, 걸림돌이 되지 않게끔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그냥 살자. 설령 그 언젠가, 나중이 20대, 30대, 40대를 넘어서 50대가 되더라도.
나는 지금도 평범하고, 애매한 사람이다. 지금은 그나마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넘쳐나고,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걸 또 업으로 삼을 만큼의 열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공부도 거의 매일을 하다 보니 좋아할 때가 많아졌지만 가슴이 울릴 정도는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애매하다 ‘. 나는 눈물을 흘릴 만큼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누구나 감탄할 만큼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특별하게 살 자신이 있다. 내가 애매하기 때문에, 평범하기 때문에 꼭 이 일을 해야 해, 나는 이 일을 해야 행복해라는 강박에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그런 긍정회로를 돌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