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91세 어르신과...
2016년 2월, 한 남성 어르신이 동주민센터를 찾아왔다. 1926년생, 이분도 91세의 어르신이었다. 차분하게 말씀하시는 노신사이셨다.
젊은 시절, 번듯하게 사업을 하셨다고 한다. 5명의 자녀를 양육하셨다. 70세가 될 무렵, 부인이 암에 걸리셨다. 부인 병원비로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모두 소진하였고 끝내는 살고 있던 집마저 처분하셨다. 그렇게 7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부인 분은 사망하셨다. 그 후 어르신은 다섯 자녀의 집을 옮겨 다니며 생활 하셨다. 길게는 수 년, 짧게는 몇 개월 자녀들의 집은 서울에, 경기에, 인천에... 여러 지방에 흩어져 있었다. 어르신은 몸 맡길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자녀 집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셨다. 고향을 떠나, 젊은 시절 본인의 인생을 지펴온 터전을 떠나, 연로한 몸을 위탁할 수 있는 자녀의 집을 전전하셨다. 이제 다섯 자녀의 집을 모두 돌았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자녀의 상황이 어려워져 다시 먼 지역의 다른 자녀의 집으로 가야 할 상황이라고 하신다.
본인은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못하겠다고 하신다. 다시 그런 생활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생을 정리하고 싶다고 하신다. 본인이 좀 저렴하게 혼자 살 수 있는 작은 방을 구하고 싶다고, 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싶으니 수급자가 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신다. 아니면 경비는 부담 되지만 요양원에 들어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신다.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녀들에게 섭섭하셨던 일들을 몇 가지 이야기 하시고, 본인은 잘 살고 있었는데, 열심히 일했고 다섯 자녀 열심히 키워놨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까지 된 것인지 모르겠다며 깊은 주름을 보이셨다.
약 2년 전의 기초생활수급권 신청기록과 현재 부양의무자들의 상황에 대해 다시 확인해 보니, 어르신의 부양의무자인 몇 자녀들의 경제력으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자녀들은 어르신의 감정적,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켜 드리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부양을 해오고 있었다. 동행정복지센터까지 걸어오실 건강상태를 보니 요양시설 입소를 안내 할 수도 없었다.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살만하신 분이시다. 하지만 어르신의 자존감은 무너져 있었다.
어르신께서는 상담 중간 중간 이제 삶을 마감해야 할 때라고 이야기 하신다. 험한 말들을 하신다. 그러나 도움이 되는 제도로 안내할 만한 것이 없다. 다만, 상담 중간 중간 다섯 자녀를 키우신 어르신의 노고, 부인의 병 치료를 위해 마지막 재산까지 소진하신 어르신의 희생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어려워진 가정환경 하에서도 어르신을 외면하지 않은 자녀들의 노력에 대한 부분도 언급하였다.
중간 중간 대화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되는 무거운 상담을 마치고,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 하신 후 어르신은 댁으로 돌아가셨다.
마음이 무거웠다. 성실하게 가정을 꾸리며 다섯 자녀가 독립할 수 있도록 키웠던 중년이, 자녀 양육, 자녀 교육, 부인 병원비로 가난한 노년이 되었다.
공공의료제도가 더 좋았었더라면, 의료비가 너무 비싸지 않았더라면 부인의 병원비로 어르신이 마지막 소유했던 집까지 파시지는 않으셨을 텐데... 그러면 지금처럼 자존감이 무너지는 노년을 보내지는 않으셨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91년의 생을 통해 얻게 된 어르신의 깊은 주름이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더 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웃으실 일이 많이 생기시길 바란다.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