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없는 것에 투자하지 말자
가끔 수년 후의 나를 상상하면서 두려움에 떨 때가 있다. 뾰족한 마음이 갈퀴가 되어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할퀼 때, 정신병원과 친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때, 병적인 초조가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개어 끝도 없는 감정들을 끄집어 올릴 때. 요령 있게 피하지 못하고 그걸 또 전부 마주하고 있는 어수룩한 나의 모습과 섣부른 행동이 후에 어떤 형태의 후회로 나를 가슴 아프게 할까 생각하면서. 인생은 나의 마음 용량에 비해 너무도 많은 것들에 정들게 만들고, 수도 없는 이별을 겪게 만들며 나를 수십만 갈래로 찢어놓는다. 아마 그렇게 찢기고 너덜거리다가 최후에 남은 한 갈래가 단단해져 성숙한 나를 만들겠지. 어쩌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뉘어지다가 산들바람에도 기꺼이 나풀거리는 마음이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를 살아내다 보면 수많은 후회들과 인사할 것이다. 처음 보는 짙은 후회와 인사, 떠나보내는 옅은 후회와 인사, 그리고 어리고 여려서 발에 채이는 후회쯤은 동정심에 방 한켠을 내어줄 수도 있겠다. 그토록 무수한 후회들은 어떠한 통로로 내게 찾아오게 될까? 그리고, 어떻게 찾아왔을까. 활짝 열어두고 무심코 잊어버렸던 마음의 뒤켠으로 수월히 들어올까? 꽁꽁 닫은 문틈 새로 바람처럼 스며들까? 후회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그러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견고히 쌓은 벽을 뚫고 들어오는 후회일수록 매섭도록 날카롭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다. 그러면 차라리 마음의 모든 문을 열어두는 게 어떨까? 후회가 고민하지 않도록, 약오르지 않도록, 무섭도록 치밀해지지 않도록. 손님처럼 맞이했다가 손님처럼 내보내는 일이 자연스럽도록. 너를 손님처럼 대접할 테니 부디 내게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바람조차 들어오지 않는 건물 안에도 햇빛의 기운은 스며든다. 그렇다고 모든 시야를 차단한 채 한낮의 아름다움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도 포기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햇빛이 그림자를 만든다고 우리가 햇빛을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후회 또한 하나의 그림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나가면 그 또한 경험이 되고 단단한 나를 만드는 소중한 자양분. 그저 모든 마음을, 마음을 다해 열어두자. 오늘도 왔니? 내일 또 오렴. 그때는 맛있는 걸 해둘게. 오늘도 마음을 한번 보듬어본다. 가치 없는 것에 투자하지 말기를. 그 옆에 존재할 아름다움에게, 지나가면 오지 않을 찰나에게 마음 쓰기를. 어떤 통로로 나를 찾아와도 좋으니 나를 지나가며 평안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