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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보았다.

by Anna Mar 19. 2025

꼬리가 9개 달린 여우가 데리고 노는 둔한 곰이 있다.


이 곰은 여우가 하는 말이 


다 맞다고만 하는 아주 어리석은 놈이다.


곰은 몸집이 크고 먹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동물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숲에 나무가 잘려나가도 


당장 내 집만 안건드리면 


다른 동물들 터전이 없어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구리들을 협박해서 얻어낸 꿀을 


두 손 가득 퍼먹으며 


집을 잃고 울부짖는 작은 동물들을 


낄낄거리며 바라 볼 뿐이었다.


여우는 말했다. 


"곰아, 곰아, 나는 꼬리가 9개 달렸기 때문에 여우가 아냐. 


그냥 신이지. 


그러니까 날 잘 섬기면 


네가 동물의 왕이 될 수 있고 


더 많은 꿀도 얻을 수 있을 거야."


곰은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앞으로 여우의 말을 더 잘 들어야겠다 다짐했다.


여우와 곰은 여러 동물들을 협박하고 


약점을 가지고 달래어 부하로 삼았다.


부하들이 곰의 말을 잘 들으면 


꿀 향을 좀 맡게 해 주었고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세워 으르렁 거렸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부하가 된 동물들이 벌벌 떨었다.



곰의 동물들은 숲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더 좋은 꿀을 찾아 주었고 


부당하게 갈취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먹이를 잃은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숲속의 왕이 되어 온갖 향략을 누리는 


곰과 여우에게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숲속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린다는 호랑이 한 마리였다.


이 호랑이는 수염을 빳빳하게 세워 


숲속에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교하게 느끼려했다.


귀를 쫑긋거리며 


곰이 으르렁 거리는 소리와 


여우가 살랑살랑 9개의 꼬리를 흔드는 소리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호랑이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곰은 꿀이 끊길까 두려워졌다.


여우는 


"꿀이 폭포처럼 흐르고 연못처럼 흥건히 고인 꿀물에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숲속 전체가 너에게 꿀을 바치도록 해봐."


여우의 말을 듣고 


곰은 꿀이 쏟아지는 지상낙원을 그려보았다.


너무나 행복한 미래였다. 


즉시 부하 동물들을 불러 


"당장 내일부터 숲속의 모든 동물들이 


나를 위해 꿀을 딸 수 있도록 해라! 


꿀을 따는데에 동의하지 않는 동물들은 


싹 잡아들여!" 라고 명령을 내렸다. 


밤 10시 28분 늦은 시각, 


동물들이 잠든 틈을 타 부하 동물들은 


터전을 모두 무너뜨릴 수 있는 


대규모 무리를 조직하여 


숲속 작은 동물들의 터전을 향해서 떼지어 몰려갔다.


깜깜한 밤 어둠의 무리들이 숲속을 더 까맣게 몰려들었다.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올빼미는 이 광경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는 이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휘리릭 날아올랐다.


곰의 부하 무리가 


싹 다 잡으러 온다는 소식이 숲속 마을에 전해졌다. 


동물들은 잠을 자지 못하고 


집 밖으로 나와 저항하기도 하고 


곰의 부하들을 설득하려고 하였다. 


그간 훈련을 해 온 곰의 부하들에게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곰은 꿀로 끈적해진 앞발을 휘적휘적 거리며 


빨리 잡아들이라 재차 명령하였다. 


9개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여우는 


곧 펼쳐질 자신들의 밝은 미래가 


코앞에 다가오자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숲속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던 


커다란 몸집의 호랑이가 


앞다리와 이어진 어깨 근육을 


설렁 설렁 움직이며 


호랑이를 따르는 동물들 무리와 함께 도착했다. 


호랑이는 곰의 부하들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는 즉시 얼어붙을 만한 


매서운 눈빛이었다. 


겁에 질려 뒷걸음치는 곰의 부하들에게 


호랑이를 따르는 동물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기세에 곰은 이미 여우와 도망을 가고 없었다.



끈적끈적해진 몸 때문에 


뛰다가 온갖 흙과 쓰레기가 잔뜩 붙은


 추한 몰골의 곰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하 동물들이 돌아오기도전에 문을 걸어잠그었다. 


부하 동물들은 무서움에 떨며


문을 열어달라 소리치고 두드렸지만 


곰과 여우는 묵묵부답이었다. 



잠잠해진 틈을 타 


대문 사이 작게 쪼개진 틈으로 바깥을 살펴보았다. 


그 때 살이 쪄 작아진 눈의 곰은 


온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매서운 호랑이의 눈과 마주쳤다.



호랑이는 영리했다. 


지금 당장 저 문을 부수고 들어가 


살이 찐 목덜미를 콱 물어줄 수도 있었지만, 


다친 동물들과 숲속의 평화를 위해서 


다른 곰과 여우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만들어야했다. 


그리서 곰의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모두가 이 광경을 볼 수 있도록 기다렸다. 



매서운 눈빛 때문에 숲속 동물들 모두가 


호랑이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숲속 동물들 모두가 


호랑이의 매서움이 지금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 호랑이의 뒤로 섰다. 


숲속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꿀만 독식하는 곰과 여우의 시대를 종식하려면


호랑이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호랑이는 곰보다 더 영리하고 힘이 셌지만 


숲속의 평화를 어지럽히지 않았다. 


가끔 포악하고 이기적인 동물들을 


혼쭐 내 주고 사라질 뿐이었다.


모든 동물들이 진지하게 마지막 의식을 기다렸다. 


곰의 집을 응시하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호랑이의 뒤로 서서 


곰과 꼬리가 9개 달린 여우의 최후를 기다렸다.


드디어 호랑이의 앞발에 힘이 실렸다. 


앞발 알 흙이 묵직함을 견디지 못하고 움푹 패였다.


어깨보다 낮춘 머리는 


날아오르기 좋게 목뼈 쪽으로 붙었다. 


호랑이의 오싹한 눈빛은 오로지 한 곳을 향했다. 


스르륵 잔뜩 힘이 실려 올라간 꼬리가 


출정하는 군대의 깃발같이 위엄있었다.


빳빳해진 수염 사이의 입이 벌어지며 


송곳니가 반짝 거렸다. 


"으르렁!"


한 번의 포효에 모두들 털이 바짝 설 지경이었다. 


호랑이는 뛰어오를 준비를 했다.


몸통이 바닥까지 낮아졌다.


호랑이의 뒤에 선 늑대와 멧돼지들이 


곧장 따라갈 준비를 끝냈다. 


모두 몸을 낮추었다. 


한 마리 새가 호랑이 머리를 휙 지나가며 숫자를 외쳤다. 


"셋! 둘! ........................................하나!"


드디어 날아올랐다! 


곰의 집보다 더 높이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호랑이가 날아올랐다. 


늑대와 멧돼지 그리고 힘이 센 다른 동물들도 


덩달아 호랑이를 따라 날아올랐다. 


이 경이로운 광경에 


작은 동물들은 넋을 잃고 동공이 더 커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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