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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귀신

- 귀신 이야기 -

by Anna

꿈속에 나타나

인간을 괴롭히는 귀신이 있다.


이런 귀신을 '악몽귀'라고 하는데


'악몽귀'는 인간이 잠이 들면

악몽을 반복해서 꾸게 만들어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드는 귀신이었다.


'악몽귀'는 전생에 쌓인 자신의 원한을

아무 관련 없는 인간에게 풀며

살아가는 귀신이었다.


'악몽귀'의 타깃이 된 인간은

간혹 가위에 눌려

악몽귀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도 있었다.


악몽귀의 외형이 대단히

무섭기 때문에 악몽귀를 마주한

인간들의 놀라움과 공포심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가위에 눌린 그 순간

온몸이 마비가 될 정도였다.



'악몽귀'는 자신을 대면한 순간 인간이 느끼는

공포심을 흡수하여 힘을 얻었다.


인간이 큰 공포심을 느끼도록

가장 무서운 얼굴로

얼굴 바로 앞에 마주 하기도 했다.


악몽귀를 마주한 인간은

운이 없으면 악몽귀의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봐야 했다.


얼굴 20~30cm 바로 앞에 등장하여

겁을 주는 악몽귀는

인간들의 몸이 덜덜 떨리도록

두려움을 갖게 하였다.


'악몽귀'는 흉물스럽고 기괴하기로

소문난 외형을 가지고 있어

인간들은 악몽귀를 보자마자

몸이 얼어붙듯이 마비되었는데


이것은 '악몽귀'가 몸을 꽁꽁 묶어놓고

인간의 두려움을 핥아먹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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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이었다.


올해 마흔 살이 된 영현이

이사를 한 후,


새집에서 처음으로 잠을 청했다.


영현은 이불이 든 대형 파우치를 뒤졌다.


그리고는 가장 좋아하는

오리털 이불을 꺼내 덮었다.


설레는 날이었지만 만만치 않았던

이사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이불의 감촉 때문이었을까,


영현은 침대에 몸을 누이고

이불을 덮자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악몽귀는 새 집으로 이사 온

영현을 타깃으로 삼았다.


영현이 새 집에서 계속해서 악몽을 꾸면

분명 '새집'의 터가 나쁘다고

다시 이사를 갈 것이 뻔했다.


악몽을 꾸면서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고

다시 이사를 갈 만큼

인간의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이

악몽귀가 원하는 일이었다.


인간의 힘이 빠진 만큼 악몽귀의 힘이

축적되기 때문이었다.


악몽귀는 그저 오늘 피곤에 녹초가 된

영현의 힘을 뺏기가 쉽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악몽귀는 서슬 퍼런 얼굴에 충혈된 눈,

관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묘한

시체의 향을 풍기며 영현에게 접근했다.


영현은 귀신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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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귀는 천천히 아래로부터 훑어가다

영현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 앞에 보이자

영현의 꿈속으로 조금씩 비집고 들어갔다.


한줄기 연기처럼 변한 악몽귀가

영현의 코 속으로 스르륵 빨려 들어갔다.




꿈속에서 영현은 운전을 하고 있었다.


해가 진 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두운 시골길을 달렸다.


처음에는 밭과 들의 풍경이 보였으나

점점 더 어두운 숲길이 되고

차는 포장되지 않은 길 어딘가로

계속 달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뾰족한 자갈들이

많이 깔려 있었지만

차가 덜컹거리지는 않았다.


헤드라이트를 가장 밝게 돌렸으나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지경이었다.


영현은 차를 멈추고 싶었지만

어두운 숲 속 한가운데서

차를 멈추는 것이 왠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혹시나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가 있는지 보려

눈을 치켜뜨고 백미러를 슬쩍 쳐다봤다.


다른 차의 헤드라이트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문득 어떤 '사람의 형상'이

거울에 비친 것 같았다.


영현이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갑자기 몰려오는 공포심에

목이 잠긴 듯 말을 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백미러를 확인했다.


허여멀건한 피부에 긴 머리칼,

눈과 입에 피가 줄줄 흐르는 귀신이

영현을 백미러를 통해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귀신의 모습은 백미러에서 점점 더 커져

영현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꺄아아아악!'


분명히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흐억, 흐어어 억, 뭐, 뭐야?'


나오지 않는 소리 대신에

영현의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였다.


찬바람이 부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영현의 뒤통수가 써늘해졌다.


백미러를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귀신이 지금 차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귀신이 아까보다 더

가까이 왔을 것 같은 예감에 침만 꼴깍 삼켰다.


핸들을 꽉 붙들고 있는

손에 땀이 나 핸들이 질퍽해졌다.


영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고 액셀레이트를

꽉 밟은 상태로 영현은 꼼짝 할 수 없었다.


머리카락과 목에서 땀이 흘러

영현의 옷깃을 적셨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영현은 겨우 얼굴을 들어 앞을 보고 눈을 떴다.


눈을 뜬 영현은

입안에 가득 찬 피를

입술과 이빨 사이로 흘려보내며

괴상하게 웃음 짓는 귀신의 얼굴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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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통 없이 얼굴만 동동 뜬 채로

피를 흘리며 영현을 보며 웃는

귀신을 보자마자 영현은

핸들을 놓치고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영현이 잠에서 깨어났다.


두려움에 몸서리치듯

비명 소리를 내뱉었다.


영현의 목구멍에 뭔가 막힌 듯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영현이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어둠이 익숙해지자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 영현의 몸 위에

악몽귀가 엎드려 영현을 정면으로 보며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영현은 악몽귀의 얼굴이 정확히 보였다.


숨 쉴 수 없는 공포심에 턱이 덜덜덜 떨렸다.


악몽귀가 영현의 몸을 꽁꽁 묶은 듯

말도 할 수 없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가족들 중 누구라도

자신을 도와줄 수 있게

소리를 지르려 입을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악몽귀는 영현이 느끼는 공포를 음미하며

조금씩 혀로 핥아 에너지를 빨아먹고 있었다.


영현이 온몸을 움직여

귀신에게서 도망가려 했다.


이리저리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했다.


발버둥 칠수록 악몽귀는

영현의 몸을 더 꽁꽁 묶어버렸다.



영현은 오싹함을 느끼면서도 귀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딘가 허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온몸을 조금씩 움직여보았다.


영현은 발가락만은 조금씩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귀신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영현은

오른쪽 엄지발가락부터 조금씩 힘을 줬다.


엄지발가락이 '까딱'하고 움직이자

귀신의 얼굴 한쪽이 '움찔'했다.


'됐다!'


이번에는 오른쪽 발 전체를

'까딱'하고 움직였다.


악몽귀가 눈을 크게 떴다.


악몽귀는 영현을

핥아먹는 것을 멈추었다.


영현이 왼쪽발까지 움직인 뒤

이내 손을 움직이고

팔을 뻗어 귀신을 잡으려 했다.


악몽귀는 영현이 팔을 뻗기 전

몸을 일으켜 영현에게 떨어졌다.


"에이씨."


영현을 다 빨아먹지 못한 악몽귀가

기분 나쁘다는 듯 한 마디를 내뱉으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허억 허억 허억."


악몽귀가 떨어져 나가고,

영현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돌아보았다.


남편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영현의 등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마와 콧잔등에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을

손으로 '쓱' 닦아낸 영현은

악몽귀가 이 방안에

계속 있다고 생각하고 소리쳤다.


"다시 오기만 해 봐! 그땐

더 빨리 일어나서 눈알을 콱 찔러버릴 거야!"


침대 아래에 손톱만 하게

몸을 접어 몸을 숨겼던 악몽귀가

영현의 목소리를 듣고 움찔하였다.


악몽귀는 이번 인간은 잘못짚었다 생각하였다.


다른 연약한 인간을 잡아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영현의 집 현관 쪽으로 스르륵 움직였다.


영현이 한밤중에 지른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남편이 덩달아 일어났다.


"어? 어? 하지 마. 살려주세요. 눈은 찌르지 마세요."


꿈에서 덜 깬 듯 횡설수설하는 남편에게

영현이 가슴을 토닥여줬다.


"자, 괜찮아. 내가 이 집에 있는 나쁜 것 쫓아내느라 그랬어.

새 집이라서 한 번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더 자. 괜찮아."


"어. 음. 알겠어."


반쯤 눈을 떴던 남편은 대답과 동시에

머리를 대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영현은 축축한 이불과 베개를

손으로 만져보고는 '번쩍' 얼굴을 들었다.


영현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까?

다시 오기만 해 봐라. 가만 안 둬."


영현의 집 현관에서 나가며

영현의 말을 들은 악몽귀의

작게 접은 몸이 더 작아졌다.


현관문 틈으로 연기처럼 빠져나간 뒤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온 악몽귀는

발도 없는 몸으로 영현의 집에서

헐레벌떡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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