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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는 하루

생각이 길어서 말이 짧아졌습니다 #001

by 자크



- 어여 일어나야지.


- 할머니가 좁디좁은 등을 살살 어루만지며 속삭일 때엔 꼭두새벽 눈 뜨는 일도 그렇게 수월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내 눈꺼풀 위에는 항상 무시무시한 거인이 올라타 있었는데, 할머니에게는 그 거인을 쫓아내는 신묘한 힘이 있었다. 그 주술을 1분만 더. 아니 1분만 더. 연장하며 느끼고 있노라면, 나는 무슨 큰 업적이라도 세우러 가는 사람처럼 스스로가 대단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공부도 못하면서.


- 덜렁덜렁. 터벅터벅. 텅 빈 가방과 의욕 없는 발걸음이 서로 박자를 맞추다 보면 미처 귀가 못한 저 너머의 달이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었다. 영교시란 늘 그랬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곤 퍼져서 음악 듣기, 자다 깬 김에 아무런 책이나 읽기, 몇 없는 친구들과 농담하기 정도였다. 그런 죄스런 시간을 보냈어도, 다시 달빛을 맞으며 귀가하고 나면 할머니는 내 등을 아침보다 세게 토닥였다. 그건, 그러니까 마치 존재의 지속에 대한 무언의 승인처럼 느껴졌다.


- 으이구. 뭔 고생이여 그래.


- 내 하루는 그런 식으로 나날이 용서받았다. 어쩌면 오늘 내가 잠들지 못하는 것은,


- 할머니. 가끔은 내 꿈에 마실이라도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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