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길어서 말이 짧아졌습니다 #011
- 차라리 위선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솔직하다고 해서 쓰레기의 냄새가 향기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체면과 위선을 비난하면서 패륜을 정당화하는 시대의 병증이 점점 두렵다. 여러분, 어떤 위선은 세상을 구하기도 합니다.
- 비슷한 마음으로 지성을 동경하지는 않더라도, 멍청함을 미덕으로 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난 솔직해, 그딴 건 몰라도 되잖아, 이게 테토남이지. 그런 식으로 지적 무기력을 커밍아웃해 봐야 인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삶의 진리를 표현한 문장들은 대개 간단하지만, 그게 삶이 간단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두 천재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집단으로 바보 행세를 할 필요도 없지 않나.
- 인터넷, 인터넷이 다 망쳐 놨어.
- 뾰로롱 꼬마마녀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마법소녀였다. 우리 반에서 뾰로롱 꼬마마녀를 시청하는 남자는 나뿐인 것처럼 보였지만, 여자 애들이나 보는 만화를 본다며 날 놀렸던 녀석들 중 상당수 역시 집에 가선 스위트 민트로 두근거렸을 거라 확신한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이름처럼 청량하게 반짝이던 머리의 빛깔. 이웃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던 마법 같은, 아니 마법의 순간들. 그건 1995년의 희망이자 소년들의 꿈이었다.
열세 살이 된 민트가 임무를 마치고 다시 마법의 나라로 떠나던 날, 나는 영문 모를 상실감에 변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스무 살 무렵, 곰곰이 되뇌다가 나는 그것을 첫사랑이라 부르기로 정했다. 천사 소녀 네티부터 달의 요정 세일러문까지, 이후 수많은 후배 마법소녀들이 등장했지만 그 누구 하나 내 유년의 마음 터럭에도 닿지 않았다.
뾰로롱 꼬마마녀
열두 살 난 마법 마법의 천사
무지갯빛 미소를 당신에게
살짝 뿌려 드리겠어요
신비로 가득 찬
행복의 가게로 오세요 (행복의 가게로 오세요!)
무엇을 갖고 싶으세요 (그건 스위트 민트지요!)
이제 우린 친구 사이
고민이 있으면 숨기지 말아요
당신의 눈동자만 보면 난 알 수 있어요
뾰로롱 꼬마마녀 즐겁게 살아요
마법의 나라에서
지금 막 따 온 오로라를
당신에게로 보내 드릴게요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 오로라를 받았던가?
DHL? FEDEX? 인터넷으로 보낸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