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센티미터> 후기

영화 <초속 5센티미터>, 2025, 오쿠야마 요시유키

by 뭉콩경

영화 <초속 5센티미터> 결말, 스포일러 포함


우리는 벚꽃이 피던 봄보다, 꽃이 지고 난 계절 속에서 더 오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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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원작 애니메이션은 타카키와 아카리 둘의 가까웠던 순간에서 시작해 점점 더 먼 곳으로 나아간다. 두 사람이 이와후네역에서 마지막으로 온기를 나누는 1부 '벚꽃 이야기'. 아카리를 그리워하는 타카키와 그를 짝사랑하는 카나에의 이야기 2부 '코스모너트'. 무료함에 빠져 대부분이 잊힌 공허한 시간을 살아가는 타카키의 현재 3부 '초속 5센티미터'. 관객은 벚꽃 나무 아래 두 사람이 가장 가깝고 뜨거웠던 곳에서 출발해, 3부까지 서서히 식어가는 온도를 함께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기찻길 씬에서 설명도, 화해도, 재회도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간 두 사람의 모습만을 바라보며 관객은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공허한 감정과 함께 여운을 느끼게 된다.


오쿠야마의 실사판 <초속 5센티미터>는 이 구조를 뒤집는다. 영화는 성인이 된 타카키와 아카리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현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거꾸로 되감겨,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2부)를 거쳐 이와후네역 재회(1부)에 닿는다. 이 구성은 좀 더 익숙하다. 비록 선형적인 시간 구성은 아니지만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는 주인공,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는 주인공,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주인공. 그 모든 것의 이유가 나중에 밝혀지는 방식. 영화적 문법으로 따지면 익숙하고 안전한 방식이며 따라서 다수의 관객에게 닿기에는 더 적합한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원작의 구조가 좀 더 매력적이었다. 오쿠야마 실사판의 구조는 "타카키에게는 무슨 과거가 있었을까?", "타카키는 왜 이렇게 행동할까?" 싶다가 엔딩을 향해 가며 "아, 그래서였구나,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었구나." 하는 타카키에 대한 감정의 이해가 찾아오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원작은 이해와는 또 다른 방식이다. 가장 애틋하고 애절하고 설레는 순간을 먼저 보여준 뒤, 이후 타카키의 공허함 들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저 직접 겪어지는 것이다. 이와후네역의 그 밤, 그날을 알고 있는 채로 타카키의 무표정을 바라볼 때, 관객은 자연스럽게 타카키에게 공감하고 함께 공허해진다.


물론 실사판이 얻은 것도 있다.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원작보다 1시간을 더 얹어 인물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 결말에서 타카키 역시 첫사랑을 추억으로 남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원작도 엔딩의 내용은 그대로이지만 비교적 끝내 그리움이라는 감정 안에 갇힌 듯 막을 내린 것에 비해 더 친절하고 완결된 이야기이다. 다만 그 친절함이 영화가 주는 여운, 잔향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들,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 그것이 제목 "초속 5센티미터 -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속도 - 감정이 서서히 멀어지는 속도"가 가리키는 감각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멀어지는 것을 배우는 일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으면 꽤 빠르게 느껴진다. 우리가 무언가를 잃는 속도도 그런 것 같다. 알아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그러나 돌아보면 이미 한참 멀어져 있는. 영화 속 타카키는 오래도록 아카리를 놓지 못한다. 그는 이와후네역 그 밤에 멈춰 있다. 사람들을 보면 사랑은 가까워지는 과정보다 멀어지는 과정이 훨씬 긴 것 같다. 그리고 멀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기술이 필요하다. 그냥 두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손을 놓는 것과 놓아주는 것은 다르다. 잊는 것과 추억으로 만드는 것도 다르다. 타카키가 오래 헤맨 건 그 차이를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타카키는 영화 <로봇 드림>을 보고 와야 할 것 같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새드 엔딩일까. 엔딩에서 타카키는 웃는다.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히. 그 웃음은 체념이 아니라 수용이다. 저 사람은 이제 내 과거에 속한 사람이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말없이 아는 순간. 멀어지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 사람을 지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더 이상 되찾으려 하지 않을 때, 그 기억은 비로소 온전히 내 것이 된다. 그리움이 상처이기를 멈추고, 그냥 그리움이 되는 것. 벚꽃이 땅에 닿고 나서야 비로소 가만히 놓여 있을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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