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극장 이야기
평소 말 한마디도 안 한 사이였지만 나는 주저 없이 말을 걸었다.
“행님, 표살돈 없는가베. 우짤라꼬?”
대답은 간단했다.
“천막 밑으로 빨리 들아가믄 된다.점마들 사람 많으면 못 잡는다.”
그 순간 나는 오늘 운명을 이형과 같이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두환이 형도 천막의 구조를 살펴보며 들키지 않고 들어갈 최적의 위치를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표소와 거리가 있어야 하고 화면앞쪽은 주의를 끌기 쉬웠고 뒤쪽은 지키는 사람의 감시가 삼엄했다. 허를 찔러 화면과 매표소 중간의 앞쪽 천막을 걷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데 우리는 의견이 일치했다. 이런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커다란 모험이었지만, 두환이 형한테는 누워서 껌 씹기처럼 보였다.
“자슥 겁먹지 마라. 내가 먼저 들어갈게. 가서 감시아저씨 안 볼 때 천막을 툭툭 땡기모 바로 들어온나.”
평소 내겐 기피의 대상이었던 그 형이 그날은 장래 우리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상영시간인 여덟 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의 광고가 톡톡하게 효과를 본 모양인지 오늘은 어제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거사를 결행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5분쯤 지났을까..
두환이 형이 천막아랫부분을 위로 살짝 걷으며 잽싸게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에서 혈관이 돋기 시작했다. 나의 오감은 천막툭툭 치는 신호가 언제 올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게 5분여쯤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갑자기 백만 가지 생각이 더 들었다. 어머니,선생님.형님.누나.친구들.무서운 얼굴을 한 감시아저씨...여러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나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천막 아랫부분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뒤통수가 찌릿했다. 누가 자꾸 뒤에서 노려보는 것 같았다. 다행히 아무런 제지도, 날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드디어 천막 안의 세상에 안착한 것이었다.
“행님, 행님도 이런 거 하나? 모범생 행님이...”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2학년 짜리 후배가 나를 알아보곤 뒤에서 말을 걸었다. 나는 조용히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종례시간에 영화 보러 가지 말라고 단단히 이른 터였기에 조심스러웠다. 에로영화도 상영했는데 선생님들은 그런 걸 걱정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먼저 들어온 두환이 형은 보이지 않았다. 영화 화면보다는 먼저 그 형의 행방을 찾기 바빴다. 천막 안을 한 바퀴 돌아보다 뒤쪽 구석에서 감시아저씨에게 뒷덜미를 잡혀서 머리통을 쥐어박히고 있는 형의 모습을 보았다. 감시원이 형을 잡아 혼내느라 내가 들어오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나는 멋진 미끼를 던져 사냥에 성공한 샘이었다. 두환이 형은 그렇게 눈물이 날 만큼 혼이 나고서는 장막 밖으로 쫓겨났다.
양심의 가책을 조금 느꼈지만, 나는 금방 스크린 속으로 빠져들었다.
(소림사 주방장 신문 포스터)
소림사 주방장은 괴짜사부를 만나 갈수록 강해졌으며, 피 묻은 침을 뱉어 거울갑옷을 입은 악당을 물리쳤다. 흑백 텔레비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와 쾌감이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이야기의 화자는 나였다.
지난밤의 모험은 물론, 영화 이야기까지 나는 여름밤 판타지의 주인공이 되어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아이들은 동그란 눈으로 귀를 쫑긋거리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두환이 형은 그 뒤 마을에서 잘 보이지 않더니 몇 달 후에는 아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부잣집에 입양되어 갔다는 소문도 있고, 가출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기술 배우러 갔다, 배를 타러 갔다, 소년원에 갔다. 여러 가지 소문만 들릴 뿐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형은 드라이버를 잘 다뤘다. 웬만한 문짝도 드라이버하나면 뚝딱하고 열어 제쳤다.
나는 그 형이 드라이버로 기술을 배워 훌륭한 기술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지금쯤은 작은 공장 사장님쯤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쪽 눈을 찡그리며 사장자리에 앉아 결재 도장을 찍고 있는 모습을 가끔씩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