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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Jun 26. 2023

대체 중독 - 커피와 보리차, 맥주와 탄산음료

인간은 중독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구나

커피는 중독성이 아주 강한 음료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먼 옛날도 아닌 비교적 아주 최근에 카페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현재는 골목마다 카페 1~2개씩은 우스울 정도로 강력한 카페 문화가 형성되었다. 스타벅스가 들어오기 전만 하더라도 자판기에서 믹스 커피를 뽑아 먹었는데 요즘은 다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진하게 뽑은 커피를 즐긴다. 10년도 안되어 너도 나도 커피 없으면 못 사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커피의 중독성은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커피를 전혀 마시지 못하다가 카페 알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와 가까워졌다. 한때는 너무 많이 마셔 잠도 오지 않고,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내 몸을 보며 나는 커피가 나에게 잘 맞는 음료는 아니구나. 카페인에 꽤 예민하구나라고 느껴 커피 끊기를 도전했다. 


예전에 TV에서 배우 신현준 씨가 담배를 끊으려고 금연껌을 씹었는데, 금연껌에 중독되었다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웃긴 적이 있다. 나도 어이가 없어 와하하 하고 웃었는데 내 이야기가 되어보니 이거 웃을 일이 아니다. 커피를 끊고 나서는 습관적으로 커피를 대체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한 뒤 매일 아침 입이 심심했다. 맹물을 아무리 마셔도 그 쓰고 감칠맛 나는, 각성의 효과까지 있는 검은색의 마법 물약인 커피를 대체할 수 없었다. 특유의 갈증이란 게 느껴졌다. 물을 오래 마시지 못해 단비를 기다리는 선인장에게 낙타 오줌을 쏘는 것 마냥 개운하지 않았다.


커피를 대체할 수 있는 건강 음료를 여러 가지 시도하던 중 보리차 음료가 그나마 낫다고 느껴졌다. 쓰고 고소한 향과 맛이 커피를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하늘보리에 중독되었다. 매일 아침 하늘보리 1L 플라스틱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그날 점심 먹기 전까지 싹 비워버렸다. 커피보다 쓴 맛이 약하니 그걸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마시게 되는 것이다. 커피는 진한 쓴 맛과 향, 그리고 지방산(크레마)을 갖고 있어 많이 마시지 못하는데 하늘보리는 꿀꺽꿀꺽 쉽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건강에야 비교적 좋겠지만 우리 집 분리수거함을 가득 채운 하늘보리 1L 공병을 보며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보리차를 직접 끓여 만들 정성은 업었고, 결국 한동안 매일 하늘보리 1L 마시고, 쌓인 플라스틱 공병을 보며 또 다른 죄책감을 느끼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나란 인간은 참 한심하구나. 커피를 끊었더니 하늘보리를 매일 무진장 마시고 있고, 또 그다음은 뭐가 될까. 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해서는 이 모양인가'하며 샤워할 때 드문 자책하기도 했다.


참, 음료 중독이 생각나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고 나면 편의점에 가서 맥주 한 캔과 감자칩 한 봉지를 사서 들어오는 버릇이 있었다.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둔 뒤 샤워를 먼저 하고 나와서, TV나 컴퓨터를 켜고 시원해진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그리고 캔 뚜껑을 딴 뒤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먼저 들이키면 유난히 고단했던 하루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입이 심심하면 감자칩을 먹으며 영화나 유튜브를 보는 게 낙이었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할 때 이 습관을 이야기하니, '어머, 완전 아저씨 같아. 혼자 집에서 맥주 마시며 궁상이라니 깬다 정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었지만 당시에 잘 보이고 싶었던 줏대 없던 나는 그때부터 맥주 대신 제로 탄산음료를 마셨는데... 결국 저녁마다 맥주의 3배 분량을 마셔, 한때 분리수거함에는 빈 제로 탄산음료 캔이 가득 찬 적이 있었다.


제로 탄산음료의 빈 캔과 보리차 음료의 빈 플라스틱 병을 분리수거하면서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 더 약한 대체물을 찾으면 그건 엄청나게 소비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참 나약하구나. 습관이 무섭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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