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어도, 또 읽어도 좋은 그리스 고전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고서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그가 사형 선고를 받게 될 최후의 재판에서 변론한 연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직접 한 것이 아닌 사후에 그의 제자 플라톤이 재구성한 작품으로, 현대 철학과 서양 정치의 뿌리가 되는 중요한 글로 꼽힌다. 그 이유는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혹은 이를 표방한)를 갖추고 있으며 그 시초인 그리스 민주정에서 소크라테스가 몸소 이 체제의 부족한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읽으면서 그의 변론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지 감탄하기보다는 그가 왜 고발을 당하고 시민들에게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는지에 주목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그리스 시민이 믿는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믿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다른 신을 믿지도 않았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키지도 않았고, 이는 고발자들과 다수의 시민들도 마음속으로는 모두 알고 있던 사실임을 그의 변론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았는가? 그는 델포이 신전에서 그가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신탁을 받고,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 당대의 지식인, 장인, 예술가들을 찾아가 진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 게다가 그가 깨달은 진리와 생각을 젊은이들에게 설파하지만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아 늘 가난하였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위 두 가지 행동은 말 그대로 소크라테스가 괘씸죄를 얻게 되는데 크게 영향을 끼친다. 당대 그리스는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이를 통해 원하는 바를 요청하는 계약 관계 형태다. 뭔가를 원하거나, 가치를 전달하면 그 대가를 받는 것이 기본 가치 체제인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지식을 설파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는 것은 당시의 그리스 시민들에게는 기존 거래와 계약 체제, 믿음을 배반하는, 이른바 물을 흐리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당대의 유명한 기득권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떠든다고 이야기했으니 얼마나 미움을 샀겠는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는 그의 죄가 실재하지 않거나 실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주정의 다수결을 통해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괘씸죄는 기존 체제를 반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에 생겨난 점이라는 부분을 다시금 짚어준다.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듣고, 아웃사이더를 불편해한다.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인터넷의 알고리즘이 정교해지면서 우리는 자꾸만 더 우리의 입맛에 맞는 편향된 정보만 접하게 된다. 제대로 된 소통과 이해가, 그리고 다른 생각을 허용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하며 이와 관련된 책을 더욱 살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