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와 설명을 대충 훑어보았을 때는 니콜 키드먼이 뭔가 숨기고 있는 반전영화라고 생각했다.
(강력한 한 방을 숨기긴 했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엥?' 이거 왜 이래? 이거 영화 맞아? 라는 느낌을 받은 이유가 다른 영화와 달리 배경도 없으며 무대 구성은 연극처럼 가상으로 가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집이지만 집을 볼 수 없고 구역만 바닥에 표시되어있으며 산과 폐탄광등.
이것이 그렇다 라는 임의하에 영화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톰, 필자는 톰이 작은 마을에 자신의 이상향에 사로잡힌 지식인 아닌 지식인으로 생각한다. 무지한 열댓명의 마을 사람들 중에서 느끼는 지적 우월감에 휩싸여있고 매 번 마을모임을 통해 자신의 허술한 도덕적 이상향을 마을 사람들에게 심으려한다. 다만 마을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수용성 부족과 무지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 '수용성'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현실적 가정이 필요하다 생각하며 자신만의 상상 속 소설을 구상하는 찰나에 황금같은 기회인 니콜 키드먼, 그레이스가 도그빌에 도망쳐온다.
첫 2주기간에는 마을 사람들의 호의로 머물며 그레이스는 진심을 다해 마을을 돕고 구성원이 되려 노력한다. 그 다음 적절한 변화점 ( 마치 실험에 있어 주기적으로 강도를 높이는 듯한 느낌의)인 경찰이 마을에 와 포스터를 붙인다. 처음에는 실종자 포스터이다. 범죄자가 아니니 마을 사람들은 그레이스를 마음 속 꺼림칙해도 여전히 받아들인다. 그 다음 포스터는 은행강도라 설명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변한다. 범죄자를 은신하는 부담감, 그녀가 이 마을을 떠나면 갈 곳이 없다는 그녀의 약점을 알게된 순간 소름끼치게 그녀의 대우가 달라진다. 그녀의 봉사는 당연해지고 오히려 노골적으로 노동착취를 요구한다. 또한 고발을 빌미로 협박해 동네 남자들은 그녀를 강간하기에 이른다.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고 톰은 이에 탈출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나는 이때 정말 톰이 정신적 이상향에 사로잡힌 나약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느꼈다. 탈출을 하지않고 계획만 세울뿐 (역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 하는 나약함을 볼 수 있다), 동네 남자들의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방문에도 묵인하며 그녀에게 자신의 마을사람들에 대한 이론만 설명할뿐이다. 그레이스는 도망을 치고자 하나 오히려 톰의 고발에 돌아오고, 이 때 톰은 돈을 훔친 자로 지목당하자 바로 그녀를 고발한다.
그는 왜 고발했을까?
자신의 이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그 이상향을 증명하기도 전에 마을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기 싫었던 것이다. 이에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의 신념, 이념이 실현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그녀는 도망을 못 치도록 무거운 쇠바퀴에 몸을 묶이고 목에는 종을 달게 된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성적 요구는 극대화되고 동네사람들의 태도는 추악하기만 하다. 후에 톰 또한그녀의 몸을 원한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동네 사람들과도 다를게 없다, 지금은 참 쉽다.' 라고 말하자 톰은 크게 분노한다. 밖에 나와 왜 분노하였는가 생각하며 사실상 자신도 욕정을 느끼고 본성에 이끌린 동네사람들과 다른게 없음을 그리고 그레이스가 그것에 대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라 깨닫는다. 자신의 삶, 이상을 정곡으로 찌르는 그레이스가 존재한다면 오히려 자신은 마을에서의 이상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없기에 결국 갱에 고발하고....
반전!으로 그레이스는 갱 보스의 딸이었고 아버지의 인간에 대한 처벌과 권력사용에 대한 정당성을 의심하고 도망나온 또 다른 이상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던 것을 알게된다. 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자신이 믿어왔던 것이 도그빌에 의해 부정되었고 잠시 나와서 나온 톰과의 대화에 자신이 틀렸음을, 도그빌 또한 되돌릴 수 없는 더러운 마을임을 깨닫고 모두 소멸시켜버린다.
영화를 보고 문득 떠오른 기억은 옛날 SBS에서 하던 '긴급 SOS' 추적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현대판 노비, 노예로 불리우는 사람들이 우리 생각보다 많았음에 국민 모두 충격을 받았고, 나 또한 충격과 인간의 추악한 본성에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현실에 이러한 사건들이 있을 법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곤경한 처지, 혹은 불리한 처지, 장애 등을 알고 자신이 아니라면 이 사람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고, 사면초가의 상대방을 도운 것에 대한 자신의 호의가 결국 자신의 권리로 변질되는 모습에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또 한 가지 주인공 톰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이상향과 지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을 관찰하기만 하고 자기의 기준에 맞는 결과를 끌어내려는 자체가 얼마나 편향적이고 위험한지를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레이스와 그녀의 아버지 대화에서 개와 인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녀의 아버지는 살해범, 강간법 등은 개와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개는 그래도 본능에만 충실한 뿐이라고 말한다. 인간과 개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녀의 인간에 대한 믿음이 꺾어져 버렸다는 말을 암시한다.
도그빌의 (Dog village) 영화 제목과 왜 마지막에 개만 살려두는 지에 대한 힌트를 알 수 있다.
개만은 순수하고 결백하다. 그 마을에서.
마지막 홀로남은 도그빌의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