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둘 셋

by 송양파

하루를 돌아다니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고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열해본다.


하루,

저어어어어어엉말 느으으으으읒게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세수를 하고 창문을 걷고 의자에 앉아 창 밖 남산타워에 눈으로 머무르다가 미용실 예약을 건다.


까데호 3집 라이브를 듣고 싶어서 유튜브에 찾아본다. 많지 않은 영상들 중에 짧은 라디오 라이브 영상을 튼다. ‘그래도 떠나지 않는 마음’이 참 좋다. 그래서 반복해서 여러 번 듣는다. 베이시스트가 눈에 띄어서 인터넷에 찾아보고,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고, 그가 속한 다른 밴드의 음악도 들어본다. 그러다 결국 ‘그래도 떠나지 않는 마음’을 다시 듣는다. 노래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그래도 떠나지 않는 마음이라니. 가사가 없는 노래는 제목의 출처가 더욱 궁금하다. 어쨌든, 그래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노래 제목 잘 지었다고. 여러 번 또 반복해서 듣는다. 미용실 예약 시간이 다 되어갈 때까지 그 노래를 계속 듣는다. 내 눈은 남산타워에 머문채로.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한 뼘 넘게 잘라내었으니 많이 잘라낸 거다.


미용사가 나보다 한참은 많아 보이는데, 나보고 꼬박꼬박 언니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뭐라고 불러야 하지?


완전 짧지도, 이제는 완전 길지도 않은 그런 어중간한 머리카락을 괜히 어색하게 만져보며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내 머리카락을 정성 들여 잘라주어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쏙 드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들어야할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어쨌든, 감사합니다. 헤어 에센스인지 헤어 오일인지 하는 걸 받아서 또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 감사한 일이 많기도 하다.


배가 고파서 점심밥을 먹을까 하다가 스타벅스에 간다. 바질 토마토 베이글 어쩌구가 그렇게 맛있다고 해서 굳이 굳이 가서 굳이 굳이 먹어본다. 베이글은 구워 먹는 거라고 아는데, 이건 또 차갑게 먹는 거란다. 포장에 차가운 거라고 써 있는 걸 보면서 베이글은 구워 먹는 거라고 알고 있는 나같은 사람때문에 굳이 굳이 이렇게 써 놓은 걸까 생각한다. 굳이 굳이 가서 굳이 굳이 먹은 바질 토마토 베이글 어쩌구는 정말 맛있었지만, 배가 불러 반이나 남긴다.


카페에서 멍 때리며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어색한 머리카락과 어색한 표정이 어색하다.

사진은 찍지도 않고 거울처럼 그저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끈다.


다시 멍 때리며 남긴 베이글을 바라본다. 이걸 어쩌나.


그리고 또 남은 하루는 어쩔까.


이런 연휴가 또 없을텐데. 이런 여유가 또 없을텐데.

이제 곧 바빠질텐데.


보고 싶었던 영화를 예매한다. <거미집>을.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예매하고선 기대감을 안고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 음 여유롭군.


학교 앞을 괜히 서성이다가 날씨가 좋아서 벤치에 앉아 분수를 바라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을 가리는 나뭇잎들이 살랑살랑 바람에 움직인다.

사이사이 햇볕이 반짝인다.

고개를 젖히고 한참 동안 하늘과 햇볕과 나뭇잎들의 무작위의 관계를 그냥 본다. 그냥 보기만 한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아무도 날 보지 않는다. 아무도 필요 없다.


나말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이 곳에서 무얼 하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서 이대로도 좋다고 되뇌인다.

이대로도 충분하고, 이 정도로 충분하고,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터벅터벅 다시 또 방으로.

어느새 조금은 채도가 가라앉은 창 밖을 보다가, 또 남산타워에 눈을 가만 둔다.

짧아진 머리카락을 또 괜히 만진다.

이리 저리 만져보다가 싫증이 난다.

통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기분이 가라앉는다.


영화 시간에 맞추어 나갈 채비를 하고 서둘러 나간다.

급히 나온 것치곤 여유 있는 시간에 두리번 거리다가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의 내가 거울 속의 나처럼 어색하다. 그래서 또 다시 울적해지는 마음. 그래도 머리카락은 언젠간 길어지니깐. 뭐...


버스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고개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홱 홱 돌리며 버스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살핀다. 고개를 돌리다가 옆에서 같은 버스인지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머쓱해서 다시 고개를 돌린다.

때마침 반가운 버스가 오고, 기사님께 눈 인사를 건네고, 한적한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는다. 맨 뒷자리에 앉으면 괜히 마음이 편하다.


버스에서 내리니 하늘은 금방 어두워져서 깜깜하다. 앞서 가는 두 사람은 친구인지 깔깔 웃으며 시끌벅적한 포차로 들어간다. 매기 포차. 포차 이름이 어쩐지 새로와서 인터넷에 찾아본다. 공심채 파스타가 맛있어 보여 혼술이 가능한 분위기인지 더 살펴본다. 테크노와 힙한 분위기라는 리뷰에 바로 마음을 접는다. 나는 그대로 조용히 갈 길을 간다. 영화관으로.


벌써 이 영화관도 두번째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앞으로 여기에 몇 번을 더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도 정이 들까. 이 곳도. 나중에 아주 아주 나중에 이 곳을 찾으면, 반가울까.


영화표를 따로 뽑지 않아도 된다고, 스마트 티켓이라는 게 있다고, 그래서 참 간편하지만 어딘가 마음은 허전하다. 어쨌든 언젠간 사라질 종이 티켓이지만. 방에서 뒹굴다가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아예 없다고 하니 이상하게 허전하다. 뭐, 이렇게 종이를 아낀다고 생각하면 좀 낫다.


영화관에 영화를 혼자 보러 온 사람은 아무래도 나 뿐인거 같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그리고 나.


덩 그 러 니 앉아서 앞만 본다.

큰 화면이 한 눈에 아무런 가림 없이 들어옴에 만족감을 느낀다. 만약 마음껏 영화관의 상태를 선택할 수 있다면 딱 이렇게, 화면과는 이정도의 거리를, 내 주변은 이정도의 사람을, 딱 이렇게 맞추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주 만족스러운 좌석에서 본 영화는 아주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만족스럽다. 애정하는 배우의 분량이 애초에 적은 건지, 아니면 애정하는 만큼 짧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영화다. 언젠가 감독은 꼭 영화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한 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작품이 떠오른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바깥으로 나오니 이제는 아예 어둡고 고요하다. 한적한 분위기가 낯설어 괜히 무섭다. 그래도 배는 고프다. 먹고 싶은 걸 생각하니 단번에 kfc가 떠오른다. 나이트 타임은 아쉽게도 놓쳤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감자튀김과 좋아하는 치킨 조각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어 신이 난다.


왓챠피디아에 별점과 코멘트를 간단히 남기고,

오늘 찍은 사진 속 중단발의 내 모습이 잘 어울린다는 사람들의 말에 고맙다고 답을 남기고,

엄마한테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핵심만 짚어 메시지를 남기고,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며 속상함 대신 안쓰러움을 남기고,

나의 슬픔을 다시 물어주는 친구들이 있어 마음으로 진심 어린 고마움을 남기고,

나 자신에게는 새롭고도 결코 새롭지 않은 질문들을 남기고.


여러 여러 것들을 남기며 도착한 kfc는 고요한 밖과 달리 한적하지만은 않아서 오히려 따뜻하다고 느껴진다.

사랑하는 감자튀김과 좋아하는 치킨 조각을 따뜻하게 먹었지만은 배가 부르진 않아서 아쉽다. 닭꼬치를 먹으려 하니 문은 이미 닫았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에 괜히 주변을 둘러보니 배스킨라빈스가 눈에 띈다. 얼른 들어가 무얼 먹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또 망고와 요거트를 각각 하나씩 시킨다. 망고 한스푼, 요거트 한스푼에 또 그다인스크에서 보낸 시간들을 떠올린다.


찬 것으로 아쉬움을 채우니 맘이 따뜻하다.

방에 들어와 온 몸을 뜨거운 물로 씻어내니 맘이 홀가분하다.

마음이 채워졌다 비워지니 참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 어쩌면 이게 참된 일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짤막하게 일기를 적는다. 적으면서 채우고 적어내면서 비우는 것이다.


밀린 과제를 해치우고, 앞으로 다가오는 일정들을 확인하고, 다시 학교로, 학기 중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루는 이렇고, 내일은 아마 이것과 다른 하루일 것이다. 그 하루들이 모여 둘이 될테니, 내일은 둘이 되겠지.

그 다음 내일은 셋이 될테고, 그것은 아마 이것들과는 아예 다른 하루일 것이다.


어쨌든, 하루는 이렇다.

작가의 이전글사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