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것들에 마음이 기울었던 새해 첫 달, 2026년 1월.
여전히 영화를 진심으로 즐기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에 감동하며 음악을 부지런히 듣는다. 여러모로 여전한 나.
<하나 그리고 둘>을 보았다. 1년 전 이맘때쯤 다녀온 타이베이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도 아기자기하면서도 어쩐지 시크한 건물들에 마음이 동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자꾸만 건물들에 눈이 머물렀다. 그 기억과 이 경험이 좋아서 대만에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가족에 관한 영화구나- 그러다가 성장에 관한 영화구나- 그러다가 사랑에 관한 영화구나- 그러다가 예술에 관한 영화구나- 그러다가 결국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인생에 관한 영화라는 걸 알았다.
가족과 성장과 사랑과 예술, 그 외에 모든 것들을 죄다 더하고 나서도 절반을 영영 보지 못한다는 인생에 관한 영화. 반쪽짜리 인생.
절반을 남기며 산다. 길을 선택함과 동시에 선택하지 않은 길이 생겨나는 것이 인생. 그렇담 선택한 길만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되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선택하지 않은 길을 걸어갈 또 다른 나를 상상한다. 달의 뒤편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라는 듯이.
살아감에 있어 늘 완벽을 추구했다. 완벽은 애초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 의심하며 늘 매 걸음걸음에 신중했다.
내디딘 모든 걸음이 허무할 만큼 어쩌면 나는 여태 본 것보다 보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아마 그럴 것이다). 그 허무한 사실, 나는 내 뒤통수를 평생 보지 못한다는 그 허무맹랑한 사실이 이토록 위로가 되는 것은 왜일까.
어쨌거나 1월에는 여전히 하루키와 이상의 글을 읽으며 진심으로 감탄했는데, 어떻게 이런 문장들을 쓸 수 있는지… 경외감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묘한 질투심과 알 수 없는 허탈감을 느꼈다. 작가도 아니면서 그렇다… 욕심이 이렇게나 많다.
하루키의 글을 읽고 이상의 문장들을 떠올리며
비슷한 사람이기에 문체마저도 닮게 되는 것인지,
비슷한 문체이기에 동경하게 되는 것인지,
비슷한 사람이기에 동경하게 되는 것인지,
동경하는 사람이기에 닮게 되는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나는 늘 나와 비슷하면서도 나보다 한 발자국(혹은 열 발자국) 더 앞선 사람에게 무한한 존경과 질투를 갖는다. 아마 이런 이유로 하루키와 이상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1월에는 내 나이보다도 더 오래된 노래들을 즐겨 들었다. 옛날 노래를 듣고 있자면, 어쩐지 나도 옛날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자랄 만큼 자랐다고 자신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삶은 본래 장난스러운 것이어서, 나의 오만함을 조용히 잠재워줄 깜짝 사건을 던져준다. 너는 아직 덜 자랐다고- 아직 한참 어리다고- 그러니까 자신만만하지 말라고.
여전한 것들 투성이인 일상 속에서 처음 만나는 것들에 어리둥절해했던 1월. 그렇게 새해를 맞이했다. 뻔한 하루를 보내는 내게, 아직 새로운 것도 많이 남아 있으니 긴장 놓지 말라고 다정하게 타일러주는 나의 인생. 반쪽자리 인생을 살면서, 영영 살지 못할 나머지 반쪽 인생을 완전히 버려두진 말라고. 달의 뒤편은 보지 못하지만 궁금해할 수는 있듯이, 여전한 인생 사이사이에 놀랄 만큼 새롭고 대범한 가능성들을 심어두자. 그렇게 올해를 지내보자고 다짐한다.
+ 그럼에도 여전해서 좋았고 앞으로도 계속 여전해야 할 것: 사랑하는 가족들의 건강, 소중한 친구들과의 시간, 운명처럼 느껴지는 나의 학문, 그리고 내 마음이 기우는 모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