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는 비행 1️⃣

1편, 아무도 타지 않는 비행기

by 비트윈랜딩

사이공 비행은

우리 회사 승무원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노선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정 때문이다.


사이공에 도착해서 하루 쉬고,

다음 날 캄보디아를 찍고 오는 짧은 셔틀 비행을 한 뒤
다시 사이공에서 하루를 더 보낼 수 있는 스케줄이다.


운이 좋으면
며칠 동안 베트남에서 머물 수 있는 비행이다.




나는
한국에 있는 간호사 친구, 세연이를 사이공으로

불렀다.


마침 친구도 휴무를 낼 수 있었다.


비행을 마치고 도착했을 때
세연이는 이미 호텔 근처에 와 있었다.


우리는 베트남까지 와서
굳이 하이디라오를 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세연이가 베트남에 와서도

하이디라오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베트남에서 중국 훠궈를 먹었다.


마트도 들르고
길거리도 조금 돌아다니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그날 밤 우리는
요즘 연락하던 사람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자들에게는
밤새 이어도 끝나지 않는 주제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캄보디아는
사이공에서 5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다.


“나 금방 갔다 올게.”


나는 공항으로 출근했다.


세연이는 그날
혼자 속눈썹 연장을 받으러 갔다.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은
턴 비행이다.


승객을 내려주고
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태워 돌아오는
짧은 비행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짐도 가져오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고
트롤리 하나 끌고
그냥 출근하는 비행이다.




문제는
돌아오는 편 브리핑에서 시작됐다.


그때 당시에는
사무장과 부사무장이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며
승객 명단을 확인했다.


VIP 승객이나
특별히 챙겨야 할 승객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캄보디아로 올 때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돌아가는 편에도 또 예약되어 있었다.


브라질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코노미 클래스였다.


턴 비행에서

내린 승객이 다시 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번거롭고, 시간도 더 걸린다.


애초에

누가 입국도 안 하고

다시 비행기를 타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동시에 바로 알아챘다.


“오디터다.”



오디터.

회사 매니지먼트에서 보내는
일종의 검사관이다.


승무원들이
서비스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복장은 규정대로인지,
화장실 상태는 어떤지,
서비스 순서는 맞는지


모든 것을
승객처럼 앉아서 체크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평가 결과는
생각보다 무겁다.


별것 아닌 실수 하나로
본사에 불려 가기도 하고,


심한 경우
징계를 받거나 해고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승무원들에게
오디터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나는 그 비행에서
가장 시니어였다.


부사무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번에 네가 그 존 맡아줘.
차라리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 말이
위로인지 압박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날
유난히 더 긴장했다.


서비스 대사를
머릿속으로 다시 외웠다.


좌석 하나하나
고장 난 곳은 없는지 확인했고,

찍찍이가 떨어진 곳은 없는지,
카펫 상태는 괜찮은지
하나하나 살폈다.


화장실도 다시 확인했다.

이미 접어두었던
두루마리 휴지의 삼각형까지
다시 각을 살려 접었다.


원래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디터가 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긴장한 채 떨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연락이 왔다.


“기체에 테크니컬 이슈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10분 딜레이라고 했다.


그리고
30분이 되었고,
1시간이 되었고,
2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상한 상황이었다.


턴 비행인데
아무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조종사들은
계속 전화를 하고 있었다.


보잉사에도 연락하고
본사에도 문의하며
여러 곳에 상황을 확인했다.


혹시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 시간은
모두 무급이었다.


단 1원도 지급되지 않았다.




조종사들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는


마치 카페에서 수다를 떨듯
비즈니스 라운지에 모여 앉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 장면은 웃음이 난다.


모든 비행기에
비즈니스 라운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행기에는
바와 테이블, 소파까지 갖춰져 있었다.


마치
럭셔리한 칵테일 바 같았다.


우리는 모여 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회사 욕도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영화를 보는 승무원들,
비즈니스 침대에 누워
연인과 영상통화를 하는 승무원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


오버헤드 빈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수학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였다.


누군가
찬물을 끼얹듯 말했다.


“우리 설마 캄보디아 레이오버 하는 거 아니야?”




캄보디아는
우리 회사 레이오버 도시가 아니었다.


그래서 호텔 계약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짐이 없었다.


“야... 우리 옷도 없잖아.”


“세면도구도 없고.”


“속옷도 없는데?”


“화장품도...”


우리는
유니폼만 입고
출근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지상 직원이 기내로 올라왔다.


그리고 말했다.


“여러분... 오늘 캄보디아에서 레이오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비행기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오버헤드 빈에서 내려가려던 승무원 하나는
입을 벌린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많은 승무원이 있었지만
그 순간
기내는 조용했다.





그리고
누군가 침묵을 깼다.


“We are fxxxed.”


‘망했다... 세연이...’





(다음 편에 계속)


캄보디아에
떨어져 버린 승무원들.

짐도 없고,
호텔도 정해지지 않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살아남을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음 이야기
② 캄보디아 생존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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