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파이크래프트(SPYCRAFT)'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독일과 스웨덴, 그리고 폴란드는 지난 2월 9일에 자국 외교관에 대한 러시아의 추방 명령에 맞서 러시아 외교관을 맞추방했다. 러시아는 이전에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에 3개국 외교관이 참여했다는 이유로 추방 명령을 내렸었는데, 이번 외교관 맞추방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루어진 조치였다. 당연히 러시아는 이 보복을 근거 없는 조치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번 결정이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내정 간섭의 연장이며, 자국의 조치는 불법 시위 참가라는 사실에 바탕을 둔 근거 있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나발니가 독극물 중독 증세로 공항에서 쓰러진 이후 나타났던 독일을 비롯한 서방국과 러시아의 지속적인 갈등, 그리고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의 양상을 보면 이번 사태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듯하다.
푸틴이 정적을 독극물로 암살한다는 의혹은 과거부터 끊임없이 제기돼왔고, 이것은 이제 일종의 밈(Meme)이 될 정도로 러시아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쳤다. 당장 러시아의 정보기관 KGB 출신이었던 푸틴이 대통령으로 장기 집권 중인 마당에, 야권 정치인의 살해 소식이 들려오면 소련 시절부터 이어진 KGB와 그들의 첩보 기술은 끊임없이 해외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또, 첩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적국의 정보를 은밀히 수집하는 행위'이기에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라 온갖 영화로 만들어지기 딱 좋다. 아마 '미국'이 만든 수많은 인기 첩보 영화의 빌런이 거진 러시아 사람이었기에 지금 우리가 러시아를 보고 위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하튼, 이번에 소개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파이크래프트(Spycraft)는 정보기관이 작전을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첨단 기술을 실제 영상과 인물 인터뷰를 통해 설명한다. 첩보에 성공하기 위해서 스파이는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소리를 잡아내는 도청 기술을 활용하거나, 타깃을 암살하기 위해 때로는 독극물, 저격, 드론을 사용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정보를 지키기 위해 암호화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반대로 이를 깨기 위한 해킹 기술도 개발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발니와 보리스 넴초프, 그리고 김정남을 암살하기 위해 러시아와 북한이 사용했던 독극물 암살의 발전사가 흥미로웠다.
드론과 무인기가 암살 작전을 위해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세계는 최신 기술을 적용한 무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판도가 달라짐을 잘 알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과 걸프전을 통해 자국의 힘을 만천하에 떨쳤고, 최근 이란 이슬람 혁명 수비대의 지휘관이었던 카셈 솔레이마니를 드론을 활용하여 암살함으로써 다시 한번 이를 증명해 보였다. 이는 과거 9/11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제거 작전에서 사용되었던 군사 위성과 로봇의 발전형이었다. 앞서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암살할 때 사용한 'MQ-9(General Atomics MQ-9 Reaper/Predator B)'도 무인기로, 미군의 인명 피해 없이 타깃이었던 솔레이마니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시리즈 후반부에 나오는 '인간의 판단이 아닌 자체적인 알고리즘을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기계의 등장을 예고하는 증언을 듣고 있자면 앞으로 미래의 전쟁과 첩보 작전이 얼마나 은밀하고 파괴적일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한반도 역시 첩보 작전의 중심지였다. 남한과 북한은 끊임없이 도발과 대응을 반복하며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왔는데, 특히 종전 이후 몇십 년 간 북한의 간첩들은 계속해서 혼란을 야기했다. 서울로 침투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일명 '김신조 사건'부터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대한항공 비행기 폭파 사건, 버마 사태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북한 공작원들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남한을 공격해왔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으로 인해 죄 없는 민간인이 희생되었으며 젊은이였던 우리나라의 군인들도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북한의 핵 개발 이후 우리나라의 안보와 유사시 대응 방안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그리고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노력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우리나라의 우주 발사체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해제됨으로써 우리나라도 이젠 감시 위성과 미사일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미사일과 로켓의 기동성을 높이고 발사 준비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고체 연료는 과거 지역 군비 경쟁의 유발을 우려한 미국 정부에 의해 엄격한 제한을 받았으나, 2020년 7월 28일에 해제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의 해제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과 연구소, 개인은 다양한 형태의 우주 발사체를 제한 없이 연구, 생산 및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방산 장비가 민간 산업 영역과 협력하게 되면서 관련 업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어느 방산 기업이 잠수함에 활용될 에너지 저장장치(ESS) 개발을 위해 업무협약을 맺었고, 헬기 제작에 참여했던 기업이 민간 위성 시장에 진입했으며, 그 외에도 정밀 유도무기나 소형 무인헬기 기술 개발을 위한 다양한 업무 협약이 맺어졌다. 이는 정부가 정해둔 매출이 국방 예산을 벗어나기 힘든 군사산업에게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으며, 방산과 민간의 기술 협약이 산업 경쟁력과 국방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군대에서 실전용으로 쓰이는 기술이 민간에서도 즉시 전력감으로 기능하고, 반대로 민간 분야에 진출하는 방산 업계가 한정된 매출을 넘어 더 많은 발전을 이룩할 초석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변화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들은 라듐이 죄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때 지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과연 인류가 자연의 비밀을 많이 아는 쪽이 유리한 것인지, 모르는 것이 유리한 것인지 판단이 안 된다. 과학이 죄 많은 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 파괴(destroy)의 수단이 된다면 지식은 필요하지 않다.
- 마리 퀴리 -
기술은 인간이 흘린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그것이 전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든, 혹은 숨 막히는 공장에서든 간에 상관없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피해를 줄이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탱크와 전투기, 핵무기를 만들어냈으며 자본가들은 인건비를 아끼고 이득을 늘리려 공장을 기계로 채웠다. 그리고 인간은 소외되었다.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 일반 사람들은 분노했다. 기술이 밥그릇을 빼앗고 권력층의 은밀한 관음의 도구로 전락하며, 심지어 목숨도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반 기술주의, 기본소득제 같은 새로운 생각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촉발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신냉전과 국가 간 폐쇄주의는 오히려 신기술 개발 및 도입에 박차를 가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기술은 이제 다시 군인, 스파이, 정치인, 그리고 그들이 목표로 하는 타깃의 피를 노리고 있다. 당장 옆 나라 중국과 러시아는 끊임없이 한반도 상공과 영해를 침범하고, 미국은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으며, 북한은 미사일을 만지작거린다. 러시아는 나발니의 폭로로 인해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으르렁거리며, 대만은 다시 한번 중국의 스파이를 붙잡았다. 라듐을 발견한 마리 퀴리는 과학이 죄 많은 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 파괴의 수단이 된다면 지식은 필요하지 않다고 역설했지만, 그녀의 바램과는 달리 이제는 모두가 모두에게 죄 많은 사람이 되어가는 듯하다. 오늘날 각자의 정의를 위해, 어쩌면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과학자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고 군대와 정보기관은 전쟁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스파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