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동반자로서 받은 선물
청소년 상담을 했던 시간들은 참으로 행복했다.
“청소년 상담자대학”과정을 마친 후에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청소년의 전화 1388”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하면서 같이 울고 웃으며 겪은 일들이 생각났다. 첫 상담을 했던 내담자는 고3이어서 밤 10시에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국밥집에 데리고 들어가 저녁을 먹였다. 또 추운 겨울에 먼 거리에 있는 곳까지 상담하러 다니며 며칠간 감기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한 내담자의 집안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어 함께 치운 일도 있었고, 어떤 가정은 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집안이 정리 정돈은 물론 청소가 안 되어 있어서 싱크대를 닦는데 바퀴벌레가 많이 나와 청소하고 난 다음 냄새가 배어, 심한 구토로 삼 일간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던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내담자는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등교를 거부하고 은둔해 있었다. 상담을 통하여 마음 문을 열고 학교 밖 검정고시 반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였고 교육감상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중학생 내담자는 카드 도용 등의 비행으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퇴학 처분을 하였다, 급기야 어머니는 아들이 사회에 나오면 또 사고를 친다고 변호사에게 탄원서를 보내 소년원에 더 있게 해 달라고까지 했다.
‘아들의 되풀이되는 비행으로 얼마나 견디기 힘이 들었으면 그런 부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그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며칠 후 내담자의 어머니와 함께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둘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직장을 다니며 결혼도 해서 아빠가 되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기뻐하실 그의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떤 내담자는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와 살게 되었는데, 재능기부 센터를 연계하여 공부방을 만들어주게 되었을 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부모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던 중학생들은 이제는 미용사와 간호사가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다. 키우던 강아지가 아파서 동물병원까지 동행하였지만 끝내 죽었을 때 함께 울어주었고, 골프선수가 되겠다는 중학생은 친구 관계의 어려움으로 꿈을 포기하려고 했다가 다시 도전하겠다고 하며,
“선생님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성장하고 변화되어 가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나를 만났던 아이들이 학교에 복학했다는 소식, 군대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의 상담을 통하여 자녀가 변화된 모습을 보고 부모님들이 주위 분에게 추천해 줄 때는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힘들었을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상담 신청을 해 놓고 여러 차례 미루다가 결국은 상담을 안 하겠다는 문자가 왔던 적도 있었다. 추운 겨울날 상담을 거부하고, 전화를 받지 않아 집으로 찾아가 문 앞에서 떨고 있는데 문을 열어주고, 마음을 열었을 때는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혼자 미소를 지었다. 또 내담자로부터 방금 출발했다는 전화를 받고, 1시간을 길에서 기다리기도 했고 끝내 나타나지 않아 비를 맞으며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올 때는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센터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문화 체험을 참석하도록 권유하고 안경 지원, 치과 치료, 아름다운 가게 지원, 영화관람, 놀이공원에 동행도 하였다. 어려운 가정에 갈 때는 과일이나 김치, 반찬 등을 챙겨주기도 했다. 늦은 시간까지 부모가 귀가하지 않을 때는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내담자의 생일이 되면 집으로 초대해 축하해 주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삼 남매가 숙제하며 프린터가 없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집에 돌아와 마음이 편치 않아 그 밤에 프린터를 갖다 준 일도 있었다.
청소년동반자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9개월 동안 병상에 계셔서 매일 아침식사를 챙겨드리기 위해 병원에 다녀야 했고, 병세가 악화되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내담자와 첫 회기 상담을 약속하여서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추운 겨울에 상담하러 가는 중에 빙판길에 넘어져 등에 금이 간 상태에서 아픈 것도 잊은 채,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가서 상담을 한 후 병원에 갔더니 3개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입원도 하지 않고 보호대만 착용하고 다녔는데 기적처럼 나은 경험도 있었다.
밤낮으로 상담을 하느라 가정 일에는 소홀할 때가 많았다. 남편은 집안일도 해주고, 상담 시간에 쫓기거나 밤늦게 가야 할 때면 차로 데려다주며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보니,
“외로워요.”
외치는 소리조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 해요.”
말하며 집을 나서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녀들과도 같이 있어주지 못하였지만 잘 참아주며,
“우리 엄마 대단해요, 나도 엄마처럼 살고 싶어요.”
오히려 위로와 용기를 주곤 했다.
청소년 동반자를 은퇴 후에도 “1388 전문직 상담원”으로 청소년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려고 한다. 내가 상담했던 청소년들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청소년 동반자는 나를 성장시켰고, 그들에게 많은 사랑을 선물 받았기 때문에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만났던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며,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싶다.
*청소년동반자프로그램: 위기청소년을 돕는 전문적인 서비스로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서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상담, 정서적 지지, 기관연계를 제공하는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