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면 생은 대체로 평범한 나날이었다.
가끔은 기쁨 한 스푼, 혹은 두 스푼의 슬픔이 양념처럼 뿌려질 때도 있었고,
드물지만 기쁨이 넘치거나, 파도처럼 슬픔이 밀려든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생은 영롱하게 반짝거리거나, 무거운 돌덩이를 매단 채 컴컴한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반짝이는 시간은 길지 않았고,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다시 떠오르지 않은 적도 없었다.
대부분 어제와 비슷한 날들이 이어졌고, 지루하다 싶을 만큼 특별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쉰이라는 나이가 되고 보니, 별일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라고 여겨진다.
별일이란 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별일 없이 그럭저럭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다행인 것이다.
살면서 불현듯 마주치게 되는 사건들은 그 순간에는 크고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갑자기 맞닥뜨린 사건들은 돋보기로 보듯 확대 해석되었지만 지나고 보면 이미 기억 속에서 휘발되었거나 희부연한 이미지로만 남아있었다. 애써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해도 아련하게 피어올랐다가 금세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광고인 박웅현이 어느 강의에서 말했다.
'어떤 특별한 순간에 찬란하기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찬란해야 한다고. 매 순간에 찬란해야 한다고.'
또 이런 말도 했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순간은 의미 없어진다.'
이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지금을 잡아라' 혹은 '오늘을 즐기라'와 같은 맥락일 것이고
생의 마디마디마다 의미를 새기면서 영롱한 순간을 찾아내고 그걸 느끼며 살아보라는 뜻일 거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찬란한 순간을 발견해 내기란 쉽지 않았다.
생의 영롱한 순간은 살피고 찾아서, 쌓인 먼지를 털어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경우가 많았고, 그 빛 또한 희부윰해서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그런 순간을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마도 세상과 스스로를 관조해 내는 연습이 부족했던 까닭이고, 내 옹졸했던 마음 탓일 것이다.
가끔은 생의 찬란한 순간이 그냥 내 앞으로 툭, 떨어질 때도 있는데 바로 그저께 해질녘이 그랬다.
긴 무더위와 업무성과에 대한 부담감으로 며칠 동안 우울한 기분이 이어지고 있었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우유와 달걀을 구입하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어댔다. 우산을 준비 못해 당황스러웠고, 소나기에 발이 묶이게 됐다고 생각하니 가뜩이나 무거운 마음에 짜증까지 더해졌다.
하는 수 없이 마트 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10분쯤 지났을까, 비가 잦아들었고 나는 서둘러 마트를 빠져나왔다. 숙소에 도착할 무렵엔 비가 뚝 그치더니 거리에는 어느새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동화처럼 아파트 단지 위로 무지개가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순간, 딴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와! 무지개가 떴네.'라고 중얼거리며 물끄러미 무지개를 보고 있었다. 그러자 무겁게 가라앉았던 하루가 한결 가벼워지고 깨끗해지는 듯했다.
얼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무지개가 행운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고, 카카오톡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행운을 기원한다는 내용과 함께 무지개를 찍은 사진을 보냈다. 스스로에게 행운을 빈 것은 물론이다.
내내 무거운 기분에다, 갑작스런 소나기까지 더해져서 자칫 침울할 뻔했는데, 마술처럼 피어난 무지개 덕분에 그날 하루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건 풀잎에 매달린 빗방울에 햇살이 비추는 듯 맑고 영롱한 순간이었다.
그날 밤은 무지개가 눈에 어른어른거렸고
밤바람의 온도가 달라졌고
지루했던 여름이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