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될 순 없지

by 난척선생

언제부턴가 끙끙거리고 있는 제 모습이 자주 눈에 띕니다.

음... 그러니까, 앉았다 일어설 때나 조금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혹은 선채로 양말을 신으려고 한쪽 다리를 들 때마다 "어이쿠" 혹은 "으윽" 등과 같은 신음소리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더군요.

처음 힘에 부쳐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인식했을 땐, 그냥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며 멋쩍게 웃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런 소리를 다 내고 있네. 참 별 일이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거죠. 하지만 끙끙 앓는 소리는 날이 갈수록 더 빈번해졌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 어쩔 수 없어. 이게 다 늙어가는 생의 과정인 거야.'

매일 운동을 하고, 담배은 피우지 않으며, 영양제도 꼬박꼬박 복용하는 등, 나름의 체력관리를 해오던 저로서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에 기분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그나마 요즘 들어 이런 씁쓸함과 아쉬움이 떨어져 나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이제 세포 하나하나가 노화되고 있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나이가 된 거야. 애써봐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게 현명한 자세야.'

이런 생각으로 매번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있습니다만, 이런 수긍과는 상관없이 앓는 소리는 더 잦아지고 이젠 아예 습관이 된 듯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이렇게 습관적으로 앓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고 있는 걸까?'

생각 끝에 다음과 같은 대략의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 습관성 신음소리는 노화로 인해 체력이 달리는 것에 대한 신호이긴 하지만, 어쩌면 스스로에게 칭얼대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끙끙거리는 신음소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봐, 너도 이젠 늙어가고 있어. 내가 힘들다는 걸, 다른 누구도 아닌 너부터 알아야만 해. 그러니 네가 나를 먼저 챙기고 아껴줘.'

또 이 신음소리는 가족에게도 향하고 있음을 알겠더군요. 옆에 있는 가족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기, 내 끙끙거리는 소리를 한번 들어 봐요. 내 몸이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는 소리예요. 이젠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드네요. 그러니 나 좀 챙겨봐 줘요. 나 엄살 부리는 게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 부끄럽더군요. 뭐랄까, 다 큰 아이 같다고나 할까요. 그 왜, 아이들이 힘들거나 뭘 하기 싫을 때면 괜히 투정 부리거나 떼를 쓰잖아요. 습관적으로 나오는 내 신음소리가 아이들의 투정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 모양빠지게 아이처럼 무작정 투정 부리고 떼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끙끙 소리를 내며 교묘하게 칭얼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많은 중장년들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힘듦을 표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도 모른 채 말이죠.

대놓고 직접적으로 말을 하진 않지만 몸과 마음의 힘겨움을 그들만의 특유한 표정이나 행동, 혹은 에둘러서 하는 말을 통해, 다 큰 어른이지만 아이처럼 관심과 보살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체력은 떨어지겠죠. 지금보다 더 힘들게 뻔하고, 더 투덜대거나 칭얼대고 싶을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이만 많이 먹었지 그냥 '늙은 아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하여 이제부터라도 스스로와 가까운 이에게 투정 부리는 '늙은 아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의 내면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락없이 '늙은 아이'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더군요.

'자, 이제부터 조심하도록 하자. 지금부터라도 끙끙대는 소리를 삼가자.'


다음날이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홈 트레이닝을 마치고 나니 전신에 피로가 밀려들더군요.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고'하는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아차, 나도 모르게 나와 버렸어. 좀 더 신경 써야겠어.'


그다음 날도 운동을 했고 힘이 들긴 마찬가집니다. 이번엔 신경 쓰며 경계를 합니다. 역시 앓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더군요. 애써 신음소리를 삼켜버립니다. 안도감이 자잘하게 밀려듭니다. 왠지 모르게 좀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 빙그르 미소가 도네요.

늙었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른이 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자꾸만 끄덕끄덕 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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