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계절이 변하는 것에 민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24절기가 눈에 들어오게 되더군요.
절기가 되면 그날 아침의 날씨와 그 절기가 지닌 의미를 비교해 보게 됩니다.
가령 상강(霜降)이 되면 아침에 창을 열고, 과연 서리가 내릴 만한 날인지를 가늠해 보는 거죠.
이런 걸 보면, 이제 어쩔 수 없이 ‘옛날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해당 절기가 오면 대체로 그 의미와 날씨와 얼추 맞아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절기와 날씨가 자주 어긋나더군요.
이런 현상이 바로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사뭇 걱정이 됩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올여름 기후변화에 따른 불편을 겪고 나니 앞으로 찾아올 기후변화에 따른 후폭풍이 심각하게 걱정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여름은 일찌감치 오월 중순부터 시작되더니,
6월 중순에는 장마가 근 한 달 가까이 이어져 습하고 칙칙한 잿빛 하늘이 도시를 뒤덮은 채였으며,
지리한 장마가 끝나자 폭염이 바통을 이어받아 맹렬한 기세를 떨치더니 주야장천 이어졌습니다.
여름이 물러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도, 하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지나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고 급기야 9월 중순이 되고 추석이 왔지만 여름은 도무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자 불편함을 넘어 어쩐지 슬슬 불안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이번 추석은 ‘가을 저녁’이라는 추석(秋夕)의 이름과는 딴판으로 더운 여름이 계속되었습니다.
계절이 바뀔 낌새가 보이지 않는 탓에, 결국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버렸습니다.
보통 처서와 백로 사이엔 아침저녁으로 찬 공기가 밀려들면서 새벽녘이면 이불을 끌어당기는 맛이 참 좋았는데,
하염없이 기다려 봐도 가을은 그 기척조차 없었습니다.
급기야 9월 들어서는 느닷없이 조급증이 올라오고 짜증이 밀려들었습니다.
올여름은 아마도 가장 덥고 긴 여름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올여름이 그나마 견딜만했던 마지막 여름이 된다면, 이거 어떻게 하지요?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러워 몸서리가 쳐집니다. 다시 걱정이 밀려드는군요.)
추석연휴에는 덥다는 걸 핑계로 주로 집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간혹 생필품 구입을 위해 마트에 가거나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 거리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에 괜스레 짜증이 밀려들었고, '지겹다'와 '지겨워’라는 말이 습관처럼 툭툭 튀어나왔습니다.
평소 되도록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꺼내는 걸 꺼려합니다만, 입 밖으로 쏟아지는 이런 말을 그냥 내버려 뒀습니다. 그만큼 이 여름이 징글징글했으니까요.
앞서도 말했지만 사상 유례없이 길고 더웠던 이 여름은 내 시선을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의식'으로 옮겨지게 하더군요.
여름은 왜 이렇게 길어진 걸까.
올해는 그렇다 쳐도, 앞으로 이상기후가 더 심해질 거라고들 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어떻게 변해갈까.
내 안에서는 이런 걱정과 의문이 파도처럼 밀려들었고 결국엔 기후변화와 환경에 관한 책을 검색하고 그중 만만해 보이는 책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아무튼 덥고 답답했던 추석연휴 동안 이런저런 생각으로 기분이 심드렁했습니다.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있는 더위에 지쳤고, 이 여름이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렇게 추석연휴 5일이 맥없이 지나갔고,
또 사흘이 흘러 토요일이되었습니다.
마침내, 비로소, 드디어, 온종일 비가 내리더니 확연히 기온이 떨어지더군요.
얼른 스마트폰에 있는 날씨 앱을 열어서 기온을 확인하고, 언제쯤 비가 그칠지 체크해 보았습니다.
밤 10시 30분이 되었고, 예보대로 비가 그쳤습니다. 최근 기상청 일기예보는 시간대별로 꽤나 정확하더군요.
베란다 통창을 열고 밀려드는 바람을 맞았습니다. 상쾌했고 시원했습니다.
여름이 물러갔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를 졸라, 서둘러 비 그친 가을밤의 초입으로 나왔습니다.
어둠 속으로 안개가 느슨하게 깔려있었고, 밤바람을 타고 가을이 촘촘하게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인도를 따라 피어난 하얀 무궁화꽃이 촛불처럼 밤길을 밝히고, 풀숲 사이로 습하지만 시원한 공기가 쓸려오며 청명한 풀벌레 소리를 실어 나르더군요.
몹시도 기다렸습니다. 이런 가을밤의 정취를 말이죠.
맑고 찬 공기가 폐부로 들어차는 걸 느끼고 싶었습니다.
밤공기를 타고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풀벌레 소리가 그리웠습니다.
새벽이면 이불자락을 소중하게 끌어당기는 내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오면 답답하고 울적한 기분마저도 시원하게 뻥 뚫릴 것만 같았습니다.
여름이 더디게 지날수록 가을이 오기를 재촉하는 마음만 더 깊어지더군요.
해마다 가을 초입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아내와 함께 밤을 걸었습니다.
기껏해야 이삼주 남짓한 가을 초입은, 일 년 중 춥지도 덥지도 않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며
이렇게 귀한 계절의 마디를 그냥 집 안에서 흘려보내면 안되겠다 싶더군요.
그때부터입니다. 가을의 초입이면 매일 아내와 밤을 걷기 시작한 것이.
초가을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차량이 드문 어둑한 길을 걷고 있노라면 그저 좋습니다.
차고 맑은 공기가 내려앉은 밤, 풀벌레들의 날개 긁는 소리를 배경 삼아 걷고 있노라면 은근한 행복감이 밀려듭니다.
해가 갈수록 나무와 풀들이 들어찬 녹색 공간이 점점 좋아집니다.
까닭은 모르지만 녹색으로 들어 찬 구역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찾게 되더군요.
평생 한자리에서 조용히 머물면서, 여기에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알리고 있는 신호가 바로 '녹색'인 것만 같습니다.
저나 나나,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생명의 묘한 동질감이랄까요.
가을밤, 아내와 함께 나무와 풀들이 지배하고 있는 인적 드문 공원 산책로를 천천히 걷는 것이 다름 아닌 '행복'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투닥거리기도 하고, 때론 멋쩍은 듯 아내의 손을 잡아보기도 하면서 말이죠. 가끔 기분이 좋아진 아내가 슬쩍 팔짱이라도 끼는 순간이면, '행복이 뭐, 별 건가. 바로 이런 거지...'라고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봅니다.
극악스러웠던 여름이 저편으로 물러나고 마침내 가을이 시작되었던 그 밤,
달뜬 기분으로 아내와 밤 산책을 오랫동안 하고 왔습니다.
그로부터 4주가 지났고, 밤공기는 좀 더 차가워졌고, 이제 밤 산책을 하기 좋은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멈출 수 없다면, 소중한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수밖에 없는 거겠죠.
하여, 오늘 밤에도 아내에게 산책을 가자고 말할 겁니다.
아내가 피곤해서 내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래도 조를 겁니다. 마치 아이처럼 말이죠.
누가 뭐래도,
보물 같은 가을 초입의 밤을 걷고 싶은 겁니다. 소중한 사람과 말이죠.
이 글을 마무리 짓는 지금, 창밖엔 좀 더 가을이 들어차 있군요.
이제 곧 산과 공원에는 녹색이 희석되며 노란색과 빨간색이 도드라지겠지요.
가을 초입은 이렇게 스르르 지나가버리는군요.
이 글을 붙잡고 있던 2주, 그 사이에 초가을은 미끄러지듯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도 아내와 함께 매일 가을밤을 걸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