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진 Jun 19. 2021

호주 사람들이캐런밴여행을
즐기는 이유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1): 트위드 헤드(Tweed Head)

바다가 가까운 트위드 강에서 바다를 즐기는 강태공, 큰 배도 많이 정박해 있다.



인생의 느지막한 언저리에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문득 지금의 고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 년 정도 호주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행은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도 나의 결정을 거들었다. 퇴직한 삶이다. 특별한 얽매임도 없다. 혼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이웃에게 우연한 기회에 전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 집에서 살겠다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우리 동네에 집을 짓고 이사 올 사람이라고 한다. 계약서를 작성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니 떠밀리듯 모든 일이 결정되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좋으나 싫으나 앞으로 일 년 동안은 노숙자(?) 신세로 지낼 수밖에 없다. 집이 되어줄 작은 캐러밴도 샀다.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로부터 호주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한국 사람들은 객지에서 지낸다는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호주 사람들은 좋은 결정을 했다며, 심지어는 부러운 눈초리로 나를 보는 사람도 많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이웃은 야영장 예약을 잊지 말라고 조언한다. 요즈음 캐러밴을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집을 비워야 한다. 집안 정리를 시작한다. ‘정리’라는 단어에서 ‘리'라는 단어를 이별을 뜻하는 한자로 바꾸어 읽어본다. 정리한다는 것은 간직하고 있던 물건과 이별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미니멀리스트(Minimalist)에 대한 도큐먼트가 생각난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간직하고 평소에 좋아하던 물건까지 과감하게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끼던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을 대신해 심지어는 물건을 버려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통해 알았다.


간직하고 있던 물건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그동안 이사 다니면서 짐이 되었던 책을 정리한다. 다시 꺼내 읽을 만한 책 20여 권만 간직하고 나머지 책들은 시드니에 사는 사람에게 기증했다. 아끼던 책들이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끼며 간직하기만 했던 책이다.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이다.


옷도 정리한다. 부엌살림, 가구도 정리한다. 생활하는데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가,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봉사단체에 많은 물건을 기증했다. 그래도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정리하다 보면 버릴 것이 또 나올 것이다.


집을 비워주어야 할 5월이 다가온다. 여행에 관해 묻는 지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평소 같으면 자세한 여행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계획 없이 떠날 생각이다. 겨울에는 따뜻한 북쪽에서 지내고, 여름에는 남쪽 지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철새와 같은 떠돌이 삶이 여행 계획의 전부다. 목적지는 야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수시로 결정할 생각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트위드 헤드(Tweed Heads)로 정했다. 집에서 대여섯 시간 걸리는 골드 코스트(Gold Coast) 바로 아래에 있는 도시다. 퀸즐랜드주(Queensland)와 뉴사우스웨일스 주(New South Wales) 경계에 있기에 한 시간 간격으로 두 번의 새해를 맞는 곳으로 알려진 도시다. 퀸즐랜드와 뉴사우스웰스는 표준 시간이 연말연시에는 한 시간 다르기 때문이다. 

   

트위드 헤드를 택한 이유는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내며 캠핑에 필요한 것을 최종 점검하면서 장거리 여행에 대한 준비를 끝낼 생각이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을 것이다.


떠나기 하루 전날이다. 캐러밴에 가지고 갈 물건을 싣는다. 자동차도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주유소에 가서 타이어 압력도 캐러밴을 끌 수 있도록 조정한다. 정들었던 집도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화초에 물도 준다. 막상 떠나려니 소소하게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다음 날 아침 시원섭섭한 생각과 함께 자동차에 오른다. 그동안 정들었던 동네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언젠가 들었던 노래 가사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on the road again…’.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삶은 여행이라고 한다. 편안한 집을 떠나 도로 위에서 지내는 생소한 삶, 지금까지의 삶과 다를 것이다. 걱정되면서도 기대되는 삶이다.

 

캐러밴을 끌고 가는 운전이다. 평소보다 속도를 줄여 달린다. 앞으로 도로 위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운전도 여행의 큰 부분이 되는 것이다. 운전을 즐기며 하기로 마음먹는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는 캐러밴, 도로에는 캐러밴이 많다

 

요즈음은 내비게이션이 있어 편하다. 오래전, 20여 년 전에 했던 호주 여행이 생각난다. 지도책을 잘못 보아 헤매기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다. 내비게이션이 도착할 시간까지 알려주는 시대다. 중간에 휘발유도 넣고, 점심도 챙기면서 트위드 헤드 캠핑장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늦은 시간이다. 평소보다 천천히 운전했기 때문이다.

 

야영장은 한산한 편이다. 큰 강(Tweed River)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캠핑장이다. 조금은 힘들게 캐러밴을 주차했다. 캐러밴을 후진으로 정확한 장소에 주차하는 것이 아직은 서툴다. 그러나 많이 하면 쉽게 주차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일 년 동안 나의 집이 되어줄 작은 캐러밴



여행 첫날밤을 캐러밴에서 호젓이 지내고 아침을 맞는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다. 만나야 할 사람도 없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나만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맑은 날씨다. 멋진 하루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물가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걷는다. 바다 가까이 있는 강이라 썰물과 밀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강이다. 강바닥이 보이는 물가에는 작은 물고기가 떼를 지어 다니며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카누를 타고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도 보인다.

 

강 건너편에 많은 배가 줄지어 정박해 있다. 다른 강줄기에도 배들이 정박해 있다. 바다와 가까운 강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동네다. 한 폭의 그림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따라 산책로는 계속된다. 충분히 걸었다. 캠핑장으로 되돌아간다. 


야영장에 돌아오니 큼지막한 캐러밴에서 지내는 사람이 인사를 건넨다. 오랫동안 호주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호주 많은 곳을 다녔으나, 아직도 가야 할 곳이 많다며 몇 개월은 더 여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 광이라는 말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캠핑장에서 지내다 보면 몇 년씩 도로에서 지내는 사람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왜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행은 타성에 젖은 일상에서 탈출할 기회를 제공한다. 주위 사람의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고 지낼 수도 있다. 평소와 다른 풍경과 환경에서 나만의 자유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여행 첫날을 마감한다.  

아름다운 강(Tweed River)이 동네를 감싸며 흐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