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대륙: 카카두 국립공원
다윈(Darwin)을 찾은 관광객 대부분은 리치필드 국립공원(Litchfield National Park)과 카카두 국립공원(Kakadu National Park)도 관광한다. 다윈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볼 것이 많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리치필드 국립공원은 이미 둘러보았다. 다음 목적지는 당연히 카카두 국립공원이다.
카카두 국립공원은 남한 면적의 20% 정도 되는 큰 공원이다. 따라서 험한 오지를 찾아다니는 여행객을 위한 크고 작은 야영장이 곳곳에 있다. 그러나 외진 야영장에서 지낼 자신이 없다. 문명(?) 생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야영장을 찾아본다.
슈퍼마켓과 식당도 있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자비루(Jabiru)라는 동네를 목적지로 정했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야영장에 전화했다. 그러나 사람이 많지 않아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제는 짐을 챙기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떠돌이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나를 본다.
카카두 국립공원이 다윈에서 가깝다고 하지만 3시간도 정도 운전해야 한다. 고속도로를 타고 호주 내륙으로 들어선다. 도로는 한가한 편이다. 속도 제한도 다른 주보다 넉넉한 130km이다. 그러나 무리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달리며 차창밖 풍경에 빠져든다. 여행하다 보면 많은 시간을 자동차에서 보내야 한다. 따라서 여행을 즐기려면 운전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자비루 야영장에 도착했다. 큰 야영장이다. 열대 지방에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더운 날씨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캐러밴 설치를 끝냈다. 짐까지 정리한 후 허리를 펴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 수영장에 들어가 더위를 식힌다. 넓은 수영장에는 더위를 식히는 여행객으로 붐빈다.
다음 날 아침 박물관 건물에 있는 관광 안내소(Bowali Visitor Centre)에 가 보았다. 큼지막한 문을 열고 건물 안에 들어선다.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통나무로 만든 배를 비롯해 호주 원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생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카카두 국립공원은 일찌감치(1981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자연환경과 원주민 유산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관광안내 책자를 펼쳐보니 구경해야 할 곳이 많다. 리치필드 공원과 마찬가지로 폭포도 여러 곳에 있다. 원주민의 삶이 펼쳐져 있는 문화 공간도 있다.
더운 날씨 탓일까,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에 가고 싶다. 이곳에서 유명한 폭포(Jim Jim Falls)는 가는 길이 험하다. 바퀴가 큰 사륜구동차가 아니면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와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몇 개의 폭포 중에서 도로 사정이 좋은 폭포(Maguk Water Falls)에 가기로 했다. 비포장도로가 있긴 하지만 험한 도로는 아니다.
이른 아침을 끝내고 폭포로 향한다.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 운전하니 이정표가 보인다. 왼쪽으로 핸들을 돌려 비포장도로에 들어선다.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30여 분 걸어야 폭포가 있다는 안내판이 있다.
산책로에 들어선다. 태양이 서서히 올라온다. 흘러가는 물에 가끔 얼굴을 적시며 땀을 씻어낸다. 땀으로 몸이 젖어 들기 시작할 즈음 물소리가 들린다. 사람 소리도 들린다. 마지막 비좁은 산책로를 벗어났다. 눈앞에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호수 끝자락에는 시원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다. 힘겹게 땀 흘리며 온 보람이 있다.
이곳에는 호주 오지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외진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호수에 들어가 몸을 식힌다. 덥지도 차지도 않은 물이다. 호수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제법 큰 물고기들이 한가하게 주위를 맴돈다. 젊은이들은 폭포가 있는 곳까지 헤엄쳐 들어간다. 수영에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부러워만 할 수 없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호수에서 나름대로 자연을 즐긴다.
다음날에는 카카두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Ubirr)에 가기로 했다. 원주민들이 바위에 그린 그림들과 야생 악어를 볼 수 있는 관광지다.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린다. 차창밖에 보이는 산에는 비바람이 조각한 거대한 바위들이 자주 보인다.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에 담고 싶은 기묘한 바위들이다.
원주민이 그린 벽화가 보존된 목적지(Ubirr Rock Art Sites)에 도착했다. 이정표를 따라 산책로에 들어선다. 조금 들어가니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온다. 비바람을 피하기에 좋은 장소다. 예상했던 대로 바위에는 원주민 그림이 즐비하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벽화를 감상한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에는 예외 없이 그림을 그려 놓았다. 야외에서 열리는 그림 전시회에 온 것이다.
벽화 전시회장을 떠나 전망대(Nadab Lookout)로 향한다. 숲길로 난 산책로에 들어섰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다행히 경사는 급하지 않다. 안전시설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바위산을 천천히 오른다. 한낮의 태양은 뜨겁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위산 끝자락에 도착했다. 국립공원의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먼 곳에서 산불이 내뿜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발아래 보이는 비포장도로는 구불구불 이어져 숲속으로 사라진다. 모험을 즐기는 여행객을 위한 도로일 것이다. 시야가 넓은 정상에 있으니 마음조차 넓어지는 기분이다. 문득 어느 시인의 읊조림이 떠오른다. 도시에 사는 사람의 마음이 넉넉하지 못한 이유는 시야가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전망대에서 내려와 근처에 있는 또 다른 관광지(Cahills Crossing)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강둑까지 걸어 작은 강에 도착했다. 일부는 강물에 잠겨있는 자동차 도로가 보인다. 그러나 자동차가 못 다닐 정도로 물이 많이 흐르지는 않는다. 도로 위에서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낚시하고 있다. 물살을 가르며 강을 건너는 묵직한 사륜 구동차가 자주 보인다.
사람들은 도로에 막혀 흐름이 거의 없는 강 상류를 바라보고 있다. 악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에서 한가하게 움직이는 큰 악어들이다. 이렇게 많은 야생 악어를 지금처럼 가까이서 본 기억이 없다. 낚시하는 젊은이들은 악어에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악어들도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람과 악어가 나름의 삶을 즐기고 있다.
후덥지근한 날씨의 연속이다. 인터넷도 쓸 겸 해서 시원한 도서관에 들렀다. 노트북을 인터넷에 연결하니 우리 집에 사는 사람에게서 메일이 와 있다. 일 년 동안 살기로 했는데 일찍 집을 비우고 싶다며 양해를 구한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행 일정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세상 사는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아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니 지금의 삶으로 흘러온 것이다. 내일의 삶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삶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삶이라고 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연 따라 일어나는 삶이라고 하지 않을까. 노자 할아버지는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이라고 할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삶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자.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삶이 더 좋다는 보장도 없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