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소설
발단은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였다.
독서 동아리 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시시포스>라는 시를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낭독된 시는 이랬다.
신에게서 영원히 죽을 수 없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가 끝없이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야 하는 운명. 하지만 그 형벌 속에도 작은 기쁨과 위로가 있다. 바위를 올려놓았을 때의 짧은 성취, 다시 굴러 내릴 때 누릴 수 있는 잠깐의 휴식, 그리고 다음을 준비하며 내려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의 위로. 형벌이 영원하다면, 기쁨과 위로 또한 영원하다는 역설이었다.
그 시 속에서 “형벌과 위로의 산기슭에 서서 민들레처럼 작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소세키의 문장이 오래 남았다. 사실 소세키는 내게 낯선 이름이었지만, 그가 내가 좋아하던 <설국>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쉽지 않았다. 개인적인 시간이 부족해 띄엄띄엄 읽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한 호흡에 빠져들 수 있었다.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통속적인 줄거리 덕분에 더 잘 읽혔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문체였다.
“게다가 장마철의 무거운 공기에 휩싸여 걸으면 걸을수록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구라자카 언덕에 이르자 갑자기 눈이 부셨다. 몸을 둘러싸는 무수한 사람들과 무수한 빛들이 사정없이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이 대목에서 공기와 빛의 무게가 그대로 감각되어 왔다. 풍경이 단순히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왜 소세키가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 다이스케는 교양 있는 지식인이지만 사회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는 결국 친구의 아내 미치요를 사랑하게 되고, 사회적 의무와 개인적 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난 미치요 씨를 사랑하고 있네.”
“남의 아내를 사랑할 권리가 자네에게 있나?”
“어쩔 수 없어. 미치요 씨는 물론 자네 소유야. 하지만 마음까지 소유할 수는 없잖나.”
소설 후반부의 이 대사는 지금 읽어도 낡지 않았다.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통찰이 놀라웠다.
1909년에 발표된 <그 후(それから)>는 일본 문학에서 ‘개인’이라는 존재를 본격적으로 다룬 대표작이다. 다이스케는 사회와 가족, 도덕이 요구하는 삶을 거부하고 자기감정을 선택한다. 이는 근대적 자아의 탄생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메이지 지식인의 초상으로도 남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 이상이다. 도덕과 욕망, 의무와 자유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초상을 담아냈다. 해학적인 초기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심리적 깊이가 탁월한 후기작 <마음> 사이에 놓인 이 작품은 일본 근대문학이 서양 문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일본만의 갈등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후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 후>는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근대적 자아의 자각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다. 사회의 요구와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다이스케의 모습은 모더니즘 문학의 핵심 주제와 맞닿아 있다. 모더니즘은 전통적 가치가 흔들리는 시대에 개인의 내면, 고독, 실존적 불안을 깊이 탐구했다. 소세키가 1909년에 이미 이런 문제를 선명히 드러냈다는 사실은 놀라운 구성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전에 읽었던 여러 책들을 떠올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와 욕망의 본질을 묻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마담 로자가 보여준 자기 결정권처럼, 사회적 약자라도 끝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힘을 보여준다. 또 로맹 가리의 죽음은 예술가가 자기 삶을 스스로 마무리한 극단적 자기 결단의 한 형태였다. <그 후> 속 다이스케 역시 사회적 의무를 거부하고 개인적 감정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일맥상통한다.
소세키가 던진 질문은 단순한 삼각관계의 갈등이 아니다.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로 이 실존적 질문이다. 20세기 모더니즘 문학 전체를 꿰뚫는 문제이기도 하다. 모네가 빛의 찰나를 붙잡으며 회화의 혁신을 열었듯, 소세키는 내면의 떨림을 붙잡으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다시 그 기도가 떠올랐다.
“형벌과 위로의 산기슭에 서서 민들레처럼 작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저마다의 산을 오르고 있는 게 아닐까.
1900~1902년: 영국 유학 (런던에서 외롭고 고독한 시절을 보냄)
1905년: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발표 → 큰 반향
1909년: 대표작 <그 후> 발표 (근대 지식인의 내면을 본격적으로 탐구)
1914년: <마음(こころ)> 발표 → 소세키 문학의 정점
1916년: 위궤양으로 사망, 향년 4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