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
이 책에 관한 이야기 보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自己 앞의 生>(자기 앞의 생)의 저자는 에밀 아자르(Émile Ajar)다. 에밀 아자르는 실존 인물이 아닌 로맹 가리의 필명이다. 그러면 로맹 가리는 누구일까?
그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로맹 가리
영화 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사람. 자신의 소설같이 자신의 삶을 선택한 사람. 리투아니아 빌뉴스 태생이고 유대인인 그는 프랑스 니스에 정착했고 공군 대위로 2차 대전에 참전했다.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발표한 소설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 맨부커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다.
* 진 세버그
45세에 당대 미국 최고의 여배우 21세의 진 세버그를 만났다. 이들은 서로 숨 가쁜 사랑에 빠졌다. 그들에겐 각자 배우자가 있으나 2년 후 세버그의 집요한 요구와 임신으로 정식 결혼을 하게 된다.
진 세버그는 18세에 프랑수와 사강 원작의 "슬픔이여 안녕", 19세에 "네 멋대로 해라"로 스타덤에 올랐다.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섰으며 그로 인해 미국 FBI의 방해 공작을 받았고,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로맹 가리는 TV에 출연하여 FBI 배후설을 주장했다.
1975년, 61세에 <自己 앞의 生>(자기 앞의 생)을 발표했다. 에밀 아자르의 두 번째 소설이었고 그는 문단에 처음 등장하는 신인이었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필명인데 이를 비밀로 했다. 그러니까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와는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가상의 인물을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공쿠르상 수상 대상이 되었다. 5촌 조카를 시켜 수상을 거부했지만 주최 측은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조카가 수상하게 되는데, 가리는 공쿠르 상을 2번 수상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 것이었다. 이 상은 다른 문학상과 마찬가지로 동일인에게 평생 한 번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는 왜 부캐를 만들었을까?
로맹 가리는 죽기 전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썼다. 그가 권총으로 자살한 다음 발표해 달라고 한 일종의 유언집 같은 책이었다. 진 세버그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다음 해 그녀를 따라 간 듯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에 싫증이 났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가 싫어졌다. "나는 그곳에 안주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 초창기, 첫 소설에 대한 향수, 새로 시작하는 것, 다른 존재로 사는 것이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
<自己 앞의 生>(자기 앞의 생)이 발표될 당시 비평가들은 로맹 가리 라면 이런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을 거라는 논평을 내놨다. 그러나 한 사람, '파리 마치'의 로르 불레라는 젊은 여기자는 그렇지 않았다.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동일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두 사람의 소설 속 인물과 표현이 똑같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로맹 가리는 "그가 아직 젊은 작가인 만큼, 항의할 생각은 없다"라며 넘어가려 했다. 그는, 유언집이 발표된 후 그녀가 소망하던 대기자의 꿈이 실현되길 바랐다.
문청들의 필독서, 인생책이라는 <自己 앞의 生>(자기 앞의 생)을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로맹 가리의 짧은 유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는 삶을 살아가기보다 내 삶에 의해 살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