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은하철도 999에 대한 고고학적 단상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일본만화 “은하철도 999”는 영생을 찾아떠나는 어린 주인공과 그를 보좌하는 메텔이라는 여성의 여행기이다. 철이가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떠나는 여행 과정에서 정차하는 별과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아있다. 영생이라는 인생의 화두를 긴머리의 여주인공과 떠나는 몽환적인 우주여행으로 풀어낸 덕에 많은 사람의 기억에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2월에 이 만화를 만들었던 마쓰모토 레이지가 세상을 뜨면서 다시 이 만화영화가 회자되기도 했다. 

‘은하철도 999’의 원작은 1934년에 미야자와 겐지의 사후에 발간된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각색한 것이다. 원작 소설은 주인공 죠반니가 병 걸린 어머니의 간호를 위해서 우유를 얻으러 이웃집 목장으로 가는 과정에 일어난다. 목장 한 가운데에서 갑자기 하늘에 번쩍이며 기차가 내려왔고 기차 안에서 친구인 캄파넬라가 불러서 그 열차에 탑승한다. 친구 캄파넬라와 여러 별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결국 친구 캄파넬라도 사라지고 주인공은 잠에서 깬다. 우유를 얻으러 가던 중에 목장 풀밭에서 잠이 든 것이다. 우유를 얻어서 돌아오다가 마을 앞의 강에서 친구 캄파넬라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대신 죽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캄파넬라는 죽고 나서 은하수로 떠나는 열차에 타면서 잠시 친구인 조반니를 함께 태우고 여행을 함께 한 것이다. 죠반니는 그녀와의 여행을 비밀로 하고 어머니를 살리는 우유를 품에 안고 집으로 사라진다







생명의 상징 우유

미야자와 겐지와 그의 책 은하철도의 밤, 2009년에 재출판


 

은하철도의 밤에서 그들을 이어주는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우유이다. 은하수(milky way)는 바로 우윳빛으로 이어지는 하늘의 길이다. 친구 캄파넬라는 죽어서 은하수로 떠나고, 현실의 주인공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살리는 우유를 구해온다. 수많은 고고학적 자료에서도 우유는 바로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우유는 아기에게 먹이는 생명의 원천이며 생명을 잉태하는 정액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런 상징성 때문에 2500년 전 러시아 알타이의 대표적인 유목민의 흔적인 파지릭문화의 고분 속에서도 우유를 넣고 휘저어서 먹는 음료수를 담은 토기나 나무 그릇이 발견되었다. 원래 유목민들은 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릇은 많이 쓰지 않는다. 하지만 화려한 황금을 몸에 두는 거대한 무덤에서 정작 시신의 머리맡에는 소박한 토기가 발견된다. 바로 우유를 담는 용도였다. 이 세상을 떠나는 고인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용도였다. 그 토기 안에는 유제품을 휘젓는 스트로우도 함께 나왔다. 신선한 우유는 금방 상하니 케피어나 요구르트처럼 발효시킨 유제품으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파지릭 고분의 우유를 담은 그릇과 스트로


영원의 길을 떠나는 열차 

 

사람이 저승으로 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 시대나 사회마다 서로 다양하게 생각한다. 대체로 삼도천이나 요단강 처럼 강을 건너간다고 믿거나 하늘로 올라간다고도 생각한다.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는 경우는 인간이 직접 날 수는 없으니 다른 동물이나 도구를 빌어서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날개가 달린 새나 호랑이를 타기도 하고 뱀의 꼬리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도 생각했다. 시베리아의 바이칼 서쪽에 위치한 ‘세로보’라는 마을 근처에서 발굴된 6천년 전의 무덤에서 마치 은하철도의 이야기를 연상하는 흥미로운 샤먼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두 개의 머리를 한 동물이 마치 메텔의 치렁치렁한 머리처럼 꼬리를 했는데, 그 끝에는 그 동물과 함께 어딘가를 여행하는 샤먼의 얼굴이 달려있다. 약간은 굳은 얼굴을 한 샤먼의 모습은 굳게 긴장된 얼굴을 한 것이 마치 만화 은하철도의 주인공 철이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하다. 앞에는 사람과 동물의 머리가 달려있다. 아마 하나는 그들을 타고 가는 동물, 그리고 또 하나는 그를 인도하는 전령사였을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영원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중국의 청동기에도 새겨져있다. 흔히 ‘식인’장면이라고 불리는 상나라 때의 청동기이다. 마치 거대한 동물이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모습이 표현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그 귀한 제사를 위한 청동기에 굳이 잡아먹히는 사람을 새겨넣는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이 장면은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 아니라 동물이 사람(또는 샤먼)을 입에 물고 피안의 세계로 나가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신대륙에서는 멕시코 팔렝케에서 발굴된 서기 7세기때의 파칼이라는 왕의 무덤이 유명하다. 그가 묻힌 석관의 뚜껑에는 무엇인가를 조종하며 날아가는 듯한 모습이 새겨져있다. 그래서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동안 마야문명의 주인공들이 우주선을 탔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이 모습을 구름을 타고 피안의 세계로 떠나가는 파칼왕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약 4천년 전 전차(chariot)이 등장하면서 저승가는 길을 오고가는 전차로 바뀐다. 구약의 에스겔서를 비롯해서 성경의 곳곳에는 하늘의 천사가 전차를 타고 오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은하철도의 이야기에서는 전차 대신에 당시로서는 첨단의 교통수단이었던 철도가 등장한 것뿐이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묵직한 쇳덩어리 은하철도의 기차가 잘 어울려 보이는 이유이다. 이렇듯 호랑이, 구름, 전차, 기차 등 지난 수천 년간 다양하게 표현되었지만 모두 인간을 저세상으로 인도해주는 매개자가 있다고 믿어왔다. 이렇듯 은하철도의 이야기와 비슷한 모티브는 세계 곳곳에서 고고학 유물로도 발견되고 있다. 



상나라 때에 식인의 청동기, 그리고 토토로의 한 장면. 상나라 청동기의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피안의 세계로 데려가는 전령사인 셈이다.                 



우리 인생의 기차는 어디로 가는가?

인생이 장대한 여행이라면 그 종착역은 어디일까. 원작 ‘은하철도의 밤’과 ‘은하철도 999’는 비슷한 포맷이지만 결론에서 결정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은하철도의 밤’에는 살아서 선한 일을 했던 사람들이 종착역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며 환희로 내려간다. 기독교 신도였던 미야자마 겐지는 아마 존 버천이 쓴 천로역정과 같은 결말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배경에는 미야자와 겐지의 가족사가 숨어있으니, 어린 나이에 죽은 여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쓴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화 은하철도 999의 결말은 마치 길가메시의 서사시처럼 허망하다. 디스토피아적인 종말은 영화로도 자주 표현되었다. 1970년대에 처음 시리즈가 등장하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인류가 멸망하고 유인원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영화 혹성탈출이 그러하다. 그리고 열차라는 오브제를 사용한 또 다른 영화 설국열차는 은하수를 향하는 대신에 자신들이 망가뜨린 지구 위를 영원히 돌아가다 결국 멈추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과거 은하수를 보며 사람들이 품었던 낭만적인 피안의 세계 대신에 이 세상의 종착역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다. 영화 속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기계(인공지능)가 지배하는 세상, 갈수록 고립되어가는 인류, 그리고 환경파괴에 의한 세상의 변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은하철도를 보면서 낭만적인 꿈을 꾸기엔 우리의 종착역이 너무나 가혹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걱정이 아닐 것 같다. 

팔렌케에서 발견된 파칼왕의 석판, 그리고 바이칼의 신석기시대 유물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꼬리에 샤먼의 얼굴이 달려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