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관념론을 공부하며 느낀 것들
군대를 전역하고 나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철학과 출신이니만큼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철학공부를 열심히 하여 이걸로 먹고살아야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사실 그보다도 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 제 삶이 아예 뒤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나약한 제 자신이 강해질 수 있으리라는 일종의 주술과 같은 믿음도 있었습니다.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철학사 책을 계속 읽고 강의록을 꾸준히 읽으면서 메모하고 더 나아가 선생님의 강의를 모두 필사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필사한 것을 읽어보고 다시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몸은 엉망이 됐습니다. 수면이 부족한 데다가 밥도 제대로 먹기 않았기 때문이죠. 자연스레 사회성도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죠.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그야말로 공부만 했던 기간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철학 공부한다고 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 자신에게 의미 있으면 됐지, 하고 무시하곤 했죠. 넓은 세상에 대해서 크게 자각하지 못했던 때였으니까요.
철학 중에서도 헤겔 철학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원을 떠난 지 6~7년이 됐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공부하던 시절에 학계에서 헤겔 철학, 칸트 철학은 공부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전공으로 삼아 평생 매진하려는 학생이 없습니다. 당시 학계의 대세는 영미 철학이었습니다. 언어철학과 논리철학, 과학철학과 같이 합리적인 분야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죠. 독일철학이라고 하더라도 하이데거를 많이 연구했죠. 제 아둔한 생각으로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미 철학의 합리성과는 다른, 무언가 다른 방식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독일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시스템, 체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독일관념론에 매력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합리적인 줄 알았던 독일관념론에 대해서 선생님들께서는 합리적이지만은 않은데?라고 말씀해주셨다는 것이죠. 그래도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때 선생님들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요.
지금 와서 보면 헤겔 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사실인데요. 합리적인 측면과 신비주의적 측면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과 관련 수업을 들으며 선생님께서 헤겔 철학은 신학과 그 논리구조가 똑같다고 말씀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헤겔 철학은 변증법이라는 합리성의 외양을 띤 신비주의적 사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헤겔 철학의 체계를 보면 1. 논리학 2. 자연철학 3. 정신철학으로 구성됩니다.
1. 논리학은 흔히 알려져 있는 논리학이 아닙니다. “변증법적 논리”를 다루는 부분으로 먼저 있음과 없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있는 것을 꼼꼼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없는 것을 꼼꼼히 분석하다 보면 존재의 생성이 도출된다. 존재의 본질은 “있음, 삶”과 “없음, 죽음”의 변증법적 종합이다. 그래서 헤겔 철학의 논리학은 실제로 존재론입니다.
2. 이렇게 존재론으로부터 규정된 순수한 있음이 진보를 거듭하여 절대적 이념이 되고, 이는 “자연”으로 외화됩니다. 자연으로 변한 절대적 이념은 원래 정신적인 것이 물질로 변화한 것이죠. 그래서 물질의 운동인 “역학”, 즉 기계학으로 먼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기계학은 물리학을 거쳐 생물학에 이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점점 추상적인 것에서 유기체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것이 느껴지죠? 그래서 헤겔 철학을 유기체적 전체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3. 생명체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생명체에게 영혼이 있다고 봅니다. 헤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정신철학의 첫 장이 마음을 다루면서 시작하죠. 오늘날로 치면 심리학일 것입니다. 개별자의 심리로부터 시작해서 결국 인간의 영혼의 목적은 “자유”를 확보하려는 의지라고 규정됩니다. 그래서 자유의 정신은 마침내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을 만들고 경제체제를 조직하며, 국가를 만드는데 이릅니다. 이 국가들이 역사라는 필드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헤겔 철학의 입문서로 많이 활용되는 책이 “역사철학강의”입니다. 여기까지가 객관적 정신의 내용입니다. 여기까지는 지겹긴 해도 따라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문제는 다음의 “절대적 정신”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으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모호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공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단적으로 몇 문장을 옮겨 보겠습니다.
숭고한 신성은 예술품에 있어서 자신의 표현에 도달해 있다. 예술가의 천재와 감상가는 이러한 숭고한 신성 속에서 자기 자신의 감각과 감성을 가지고 편안함을 느끼고 만족하고 있으며 해방되어 있다. 자유로운 정신의 직관이나 의식은 부여되어 있고 도달되어 있다. 미적 예술은 철학이 수행했던 것과 동일한 것 [중략] 오직 사상의 경지 속에서 존재할 뿐인 참다운 객관성은 예술품이 갖는 감성적으로 아름다운 측면에 있어서는 역시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참다운 객관성은 외재적이고 아름답지 못한 감성에 있어서는 훨씬 더 결여되어 있다. 사상의 경지는 바로 순수한 정신을 정신에 대해서 존재하게 하고, 경외심과 더불어 해방을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경지이다.
[중략]
직관, 즉 감성에 묶여 있는 직접적인 앎은 자신 속에서 스스로를 매개하는 앎으로 이행하고, 자체가 앎인 현존재, 즉 계시로 이행한다. 그리하여 이념의 내용은 자유로운 지성의 규정을 원리로 가지게 되고, 정신에 대해서 있는 절대적 정신으로서 존재한다.
헤겔 정신철학, 562~563절 박병기, 박구용 옮김, 울산대학교출판부 인용.
이 부분은 정신철학에서 예술로부터 종교로 넘어가는 부분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이 부분은 낭만주의 예술에 대해서 한계를 드러내고 정신이 결국 종교로 진보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헤겔은 글에서 낭만주의를 낭만주의라고 그대로 쓰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재규정한 단어를 가져다 지칭합니다. "예술가의 천재", "직관", "감성에 묶여 있는 앎"과 같은 용어가 대표적으로 헤겔이 낭만주의 예술을 규정하는 어휘들입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직관과 천재에 의존하는 예술은 정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일면만을 제시하는 데 그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신의 참모습은 계시종교, 즉 정신이 실제로 역사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던 기독교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정신에 대해서 있는 절대적 정신은 신적인 인간,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헤겔 철학은 고유의 개념어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거의 암호해독 수준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어렵게 암호처럼 쓰느냐면, 철학의 역사가 너무 길기 때문입니다.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부터 잡아도 2500년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발전해 온 개념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헤겔이 1770년부터 1831년까지 살았으니, 플라톤 시대로부터 쳐도 2300년이나 차이가 납니다. 당시의 독일은 막 모국어인 독일어가 발흥하기 시작했던 때이고, 모국어로 철학의 고전을 쓰고 싶었던 헤겔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즉 2300년 전 용어들을 가져와서 번역하면서 자기만의 철학 용어를 만들어냅니다. 2300년 전 용어를 당대 독일인들이 알아듣게 설명하려니 2중, 3중으로 맥락이 덧붙여지고, 그에 따라 가장 추상적이며 사태를 잘 드러내는 어휘들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걸 한국어로 다시 번역해서 읽으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어로 읽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황당하게도 철학의 고전들은 5년은 읽어봐야 아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감이 옵니다. 세미나도 나가보고, 논문도 읽어보고, 1차 저작들을 읽어보면 와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고 이해가 갑니다.
저도 헤겔철학은 윤리와 사상 시간에 들어봤고, 변증법이라는 유명한 개념도 있으니 대단히 합리적이겠구나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5년 정도 공부해보고 신비주의를 베이스로 깔고 있구나. 정말 심각하게 신비주의적인 측면이 있구나를 5년 동안 공부해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헤겔의 저서들을 읽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인류의 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의의를 현대인들에게 쉬운 글로 전달하고 싶은 것이 제 일생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년이 지난 끝에 황당함을 느끼긴 했습니다만, 그 황당함을 넘어서 저 자신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물질이 세계사의 주역이 아니라 정신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신비로운 모습으로 역사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헤겔의 이 생각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서 이해해야만 헤겔철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구조 자체가 창세기에 신의 논리와 인간들의 추방이 나오고,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오며 최종적으로 신의 논리가 이 세상을 다시 지배하는 날, 복음이 전파된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죠.
정신현상학도 마찬가지로 정신도 무엇도 모르던 소박한 주체가 자신의 소외를 깨닫고 정신을 자각하여 마침내 세계를 움직여가는 것이 정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도 타인도 이 세상 모두가 정신 그 자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절대적 앎에 이른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인류사의 문헌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 괴테의 파우스트, 그리고 최근에 끝난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마저도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반게리온의 본 뜻이 복음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어찌 됐든 글이 꽤나 길어졌습니다만, 저 개인의 황당함의 역사는 여기까지입니다.
합리적인 것으로 알고 공부했던 철학이 5년을 공부하고 돌이켜보니 대단히 신비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너무 황당했지만 그래도 의미를 찾았다는 것. 이게 글의 요지가 되겠네요.
어쩌면 이렇게 황당하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참 황당한 일들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치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끊임없이 찾아다니고 글을 쓰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