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는 영화관의 감동을 대신할 수 없을것
한때는 나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집 안의 TV가 커지고 OTT 시장이 거대해져도, 어둠 속에서 거대한 스크린을 마주하고 타인들과 함께 숨죽이며 영상을 보는 그 의식같은 과정이 주는 설렘은 유효하다고 믿었다. 그 낭만이 나에게는 꽤 큰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영화관을 찾을 때면, 그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불쾌함만 남는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영화관에 가는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다.
스크린 속의 감동을 논하기에 앞서, 현실의 가격표가 먼저 감동을 박살 낸다. 티켓값은 어느새 1만 5천 원을 훌쩍 넘겼다. 얼마 전, <위키드>와 <주토피아>를 예매하려던 내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쿨하게 결제하는 게 아니라, 단돈 몇천 원이라도 아껴보겠다고 할인을 뒤지고 통신사 포인트를 계산하며 끙끙대고 있는 꼴이라니. 그 비참한 과정 앞에서 영화에 대한 순수한 기대감은 식어버렸다.
게다가 편의점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팝콘과 음료 세트를 사려면 8천 원을 우습게 지불해야 한다. 소비자가 납득할 만한 서비스나 품질 개선 없이, 그저 배째라식으로 가격만 올리는 그들의 태도를 마주하면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비싼 값을 치르고 들어선 상영관의 풍경은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바닥에 널브러진 치워지지 않은 팝콘 부스러기들, 관리가 안 돼 미세하게 지직거리는 스크린... 이런 방치된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유쾌해야 할 문화생활이 한순간에 공허함으로 바뀐다.
넓은 상영관에 관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적막함은 덤이다. 활기 넘치던 과거의 영화관은 죽었다. 이제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는 일은 설렘이 아니라, 쇠락해가는 공간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우울을 마주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던 "영화관의 감동은 대체 불가능하다"라는 명제는, 어쩌면 저 터무니없는 가격과 관리 부실을 내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 걸어둔 최면, 혹은 기업들이 심어놓은 거대한 가스라이팅이자 허상이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동안 영화관에 간다는 건 자발적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둠 속에 갇혀 현실적인 판단력을 마비시킨 채, 비싼 대가를 치르며 억지 감동을 주입받았던 셈이다. 저들의 상술을 낭만이라 착각했던 그 길고 긴 혼수상태에서, 나는 이제야 비로소 막 깨어난 기분이다.
최근 넷플릭스가 워너브라더스를 인수했다는 소식은 나의 이러한 자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영화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거대 스튜디오가 결국 스트리밍 플랫폼의 품에 안겼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시대의 권력이 완전히 이동했다는 명백한 신호다.
차라리 잘됐다 싶다. 이참에 OTT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서, 그동안 관객을 볼모로 잡고 오만하게 굴었던 영화관들에게 본때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변화를 거부하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구시대의 유물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보고 싶다.
물론 용산 아이맥스(IMAX) 같은 특수관들은 여전히 압도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의 예외일 뿐이다. 대다수의 일반 상영관은 이제 경쟁력을 잃었다. 앞으로 영화관은 LP바나 오페라 하우스처럼, 영화라는 매체에 깊게 빠진 소수의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고비용의 취미 공간으로 전락할 것이다.
영화 산업 자체가 멸망하진 않겠지만, 어쨌든,영화는 계속 만들어질 거고, 새로운 스타들도 계속해서 배출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콘텐츠 제작사들의 이야기이지,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이야기는 아니다. 관객을 호구로 보는 지금의 영화관에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