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대한 환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환상은 실체가 없기에 더욱 견고하며, 스스로 환상 속에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깨어져 버리는 유리 공예와 같다. 우리가 매일 발을 딛고 서 있는 일상,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은 사실 정교하게 설계된 집단적 최면에 가깝다.
우리는 얼마나 나약한가. 광활한 우주와 무자비한 자연 앞에서 우리는 존재하기에 인간의 정신은 너무나 취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울타리를 만든다. 그것이 거창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이든, 느슨한 취미 기반의 계모임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공유되는 '담론'의 존재다. 우리는 그 담론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방패를 만들고, 그 뒤에 숨어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것은 그 방패 뒤에서 서서히 질식해가는 개인들의 초상이었다.
하나의 집단이 형성되면 필연적으로 '공유된 담론'이 발생한다. 이 담론은 민주적인 절차와 치열한 토론을 거쳐 도출된 합리적인 가치처럼 포장되곤 한다. 그리고 이렇게 귀결된 가치는 곧 그 집단의 정체성이 된다. 문제는 이 정체성이 확립되는 순간, 집단 내부에 '정상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세워진다는 점이다.
정상성은 너무나도 잘 작동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는 기준을 제공하며, 집단의 결속력을 다지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이 필연적인 과정 속에서 희생되는 것들은 언제나 소리 없이 사라진다. 집단이 정의한 정상성에서 미세하게 어긋나는 개인의 고유한 결,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은 '불협화음'으로 치부된다.
우리는 배제되는 것을 죽음보다 두려워한다. 진화론적으로 집단에서의 추방은 곧 생존의 종말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원초적 공포는 유효하다. 인간은 집단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조각낸다. 집단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어두운 심연 속으로 구겨 넣는다. 그렇게 얻어낸 안정감은 과연 가치 있는 것일까? 나는 자신을 거세하며 얻은 평온함 속에서 기괴한 슬픔을 읽는다.
최근 들어 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강고한 '성향'이나 '신념'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누군가 어떤 정치적 진영이나 가치관에 과도하게 몰입할 때, 그것은 논리적 산물이라기보다 '부정당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발현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가치관을 부정당하는 것은 곧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실하는 것과 같기에, 그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자신의 진영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세상에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아니, 세상의 본질 자체가 회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단의 논리는 명확한 흑백을 요구한다. 반대편의 의견을 단 한 줌도 수용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의 진영만이 진리라고 믿는 그 기묘한 '플로우'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것은 타자와의 대화가 아니라, 거울을 보고 벌이는 원맨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이해관계의 충돌과 혐오의 연쇄는 결국 신기루다. 불안한 인간의 내면과, 그 불안을 동력 삼아 세력을 확장하려는 집단의 뒤틀린 욕망이 뒤섞여 만들어낸 기괴한 풍경일 뿐이다. 현대 사회는 이 신기루를 '정의' 혹은 '가치'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개인들에게 판매하고 개인들은 그 신기루를 붙잡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고유성을 제물로 바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결코 내가 타인보다 더 탁월한 시야를 가졌거나, 진리에 더 가까이 서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 대한 경계이자, 기댈 곳 없는 상태를 견뎌내겠다는 처절한 자기 고백에 가깝다. 집단의 담론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편리한 안경을 잃어버리게 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즉각적으로 판별해 주던 진영의 논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해석되지 않은 날 것의 혼란만이 남는다. 나는 그 혼란을 회피하지 않고, 내 빈약한 사유의 힘으로 감당해 내야만 하는것이다.
소속되지 않은 자의 시선이 항상 두렵긴 할 것 같다. 그것은 집단이 주는 온전한 소속감과 맞바꾼, 끊임없이 흔들리는 부표 위의 시선이다. 나는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그리고 나의 단독자적 사유조차 또 다른 형태의 환상에 갇힐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나는 객관적이라고 자부하는 대신, 죽을때까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상태로 남기를 택한다. 집단이라는 성벽 안에서 보호받는 확신보다는, 성벽 밖 광야에서 겪는 불확실성이 나라는 인간의 고유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는 고독을 감수하고, 나의 무지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 이것은 우월함의 증명이 아니라, 집단에 나를 의탁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탄식한다. 집단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가는 개인들의 영혼을 보며, 그리고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나의 나약함을 보며.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그 누구의 정답도 아닌 나만의 질문을 안고 이 기괴한 현대사회에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