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는 과연 A를 트레드밀에서 내리게 만들 수 있을까?
구분: 창작 초연(트라이아웃)
공연기간: 2022. 9. 28. ~ 2022. 11. 5.
출연진: 정동화(A), 반정모(A), 주민진(B), 김준영(B), 유태율(B)
<줄거리>
돌아가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거액의 빚더미뿐인 A.
‘워싱존’이라는 고급차 대상 손세차장에서 일하며 주급을 받아 생활하는 가난한 노동자이다.
“이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10만 불짜리 자동차는 아주 저렴하게 느껴져요.” - A
세차를 맡긴 고객이 라운지에서 대기하며 A가 세차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문제가 있을 때 누르게 되는 빨간 버튼이 울릴 때마다 A의 주급은 10% 깎이지만 아랑곳 않고 기분대로 눌러대는 진상고객들에게 치여 산다. (심지어 세차 시작 전부터 빨간 버튼 남발을 하는 진상고객도 있고.)
그러다 A 앞에 갑자기 나타난 B. 제멋대로에 능구렁이 같은 그에게 A는 이상하게 끌린다.
어느 날 A는 자신이 선망하는 고객(아마도 좋아하지만 경제적 격차가 커서 차마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라일라의 차를 세차하다 스크래치를 발견하고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지는데,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B가 나타나서 라일라의 차를 개박살 내고 사라진다.
A는 허겁지겁 B가 있는 주소지로 찾아가 따져 묻고 그렇게 둘의 동행은 시작된다.
B는 A에게 부조리를 일삼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한 이들을 상대로 협박을 하여 돈을 뜯어내자 제안을 하고, 처음엔 그럴 수 없다던 A는 어느새 B의 제안에 동조를 하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일탈을 하게 된다.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
A는 자신이 가진 것이라고는 ‘도덕성’ 말고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뭐랄까, 타고난 천성이 순백이라서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기보다는 너무 가진 게 없어서 자존감이 낮아 무조건 사과를 남발하고 '정직과 성실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유일한 무기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그 도덕성이라도 잃지 않으려고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왔고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상태에서 '라일라 차의 스크래치'가 트리거로 작용하여 내면에 눌러온 인격이 분리되어 나타난 것이 B라고 해석했다.
그래서인지 B는 A가 가지지 못한 자유로움, 정의구현을 명목으로 한 폭력성, (존나)멋짐을 가지고 있고
찢어지게 가난하고 핍박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A에게 끊임없이 그 생활에서 벗어나라고 종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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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였어. 네 몸에서 악취가 났던 게.” - B
“그때부터였어. 내 몸에서 화약 냄새가 났던 게.” - A
B와 A의 이 대사로, 방화범과의 만남 이후 이미 A는 인격이 분리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추측.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라일라의 자동차 스크래치가 트리거가 되어 B가 발현된 것이고.
A는 분리된 인격과의 화해 대신 그를 제거함으로써 원래의 인격 하나로 돌아오는 것 같았는데, 그토록 스트레스로 다가온 스크래치 사건이 정작 자동차 주인 라일라에겐 별 거 아닌 것임에 허무함과 더불어 어이없음 그리고 가진 자들과의 괴리감이 부정적으로 다가오며 제거했던 인격인 B가 되살아 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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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트레드밀’은 쳇바퀴의 의미였다. 아무리 앞을 향해 걷고 달려도 제자리걸음인 A의 삶.
A는 정직하게 살아가지만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외로운 이.
B는 부조리로 가득한 사회가 불만이고 그 불만을 생각에 그치지 않고 폭력적이나마 행동으로 실천하는 A의 대변인. (그리고 A의 또 다른 자아.)
<감상평>
고야경 작가의 전작 '뮤지컬 M'과는 또 다른 인격분리극. 흥미로웠다.
전작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잠들어 있던' 인격이 깨어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분열된' 자아를 보여주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이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전반부를 보면서
'B는 A의 미래에서 온 건가? A의 삶이 너무 고단하니 미래에서 B가 찾아와 그의 인생을 구원하려 드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마치 영화 '백투더퓨처'같은 느낌으로 B는 A의 아들이고 본인 아버지의 과거 시궁창 인생을 구원해주고 싶어서 찾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둘의 동행 일탈 이후 보여주는 같은 음료수 취향, 같은 행동 습관 등을 보며 드라마 '배드앤크레이지'에 더 가까운 소재라고 판단했다.
3인의 밴드(베이스, 기타, 드럼)가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고 그에 맞춰 2개 층을 쉼 없이 오가며 연기하는 두 배우가 존재하는 무대.
배우들의 연기에 관객들처럼 웃기도 하는 밴드를 보며 살짝 '헤드윅'의 소극장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고
"열심히 살지 마!"라는 B의 대사에서 뮤지컬 '비스티'의 이재현이 떠오르기도 했다.
더불어 자신에게 위로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대사를 읊는 A를 보며 뮤지컬 'M'의 M이 스쳐가기도 하고...
다른 대학로 창작극들과 같이 결국엔 '위로'를 주고 싶은 게 이 작품의 목적이란 걸 느꼈다.
소외감을 느끼고 삶의 고단함을 가진 이들에게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게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아마도 B는 작가의 페르소나일지도...
기시감이 느껴질 만한 소재와 디테일들이 드문드문 있음에도 뻔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도 좋은 넘버들과 신선한 무대 구성,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 거기에 큰 몫을 했다 생각하는데
애초에 이머시브 공연으로 계획되었던 작품인 만큼 관객 참여를 염두한 무대와 공연 구성을 완전히 지우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애초에 어떤 방식으로 관객 참여를 염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측해 보건대 A가 B로 인해 실시간으로 외적인 변화를 당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 B의 역할이 원래는 무대석의 관객들 몫이 아니었을까 싶다.
* 정동화 배우 회차에서는 헤어스타일링을 다시 해주는 것으로 외적인 변화를 준다.
(필자는 정동화 배우의 회차만 보아서 반정모 배우 회차는 잘 모르겠지만 검색을 통해 다른 관객들의 후기를 보니 반정모 배우 회차에서는 실시간으로 메이크업을 다시 해주는 것 같다.)
<배우들>
2022년 10월 11일 현재 기준, 총 2회의 관람을 했는데 두 번 모두 '정동화 A', '유태율 B' 페어로 보았다.
아마 앞으로 더 본다고 해도 그 두 명의 페어로 보게 될 것 같고.
정동화 배우의 미성에 가까운 음색과 유태율 배우의 묵직하지만 낭랑한 음색이 꽤 조화롭다. 애드립으로 연기해야 하는 부분에서의 티키타카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잘 맞는 느낌이 들고.
정동화 배우는 이미 중소극장 공연에서는 정평이 나있는 내 마음속의 대배우님이시니 말할 게 없지만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날렵한 몸짓과 춤사위, 잔잔한 넘버에서도 리드미컬한 넘버에서도 완벽한 가창력, 정확한 발음으로 인한 대사 전달력, 풍부하고도 디테일한 감정표현까지! 더할 나위 없다.
영화배우로 비유하자면 정동화 배우는 나에게 마치 '안성기', '김윤석', '최민식'과 같은 느낌의 배우이다.
한마디로 믿고 보는 배우.
관객 입장에서는 창작 초연극을 마주하는 부담에 있어서 작품 자체의 재미를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배우의 연기만큼은 보증이 되어 있으니 볼까 말까 할 때 정동화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면 일단 보게 되는 그런 느낌.
유태율 배우는 괴물급 신인이었다. 노래, 발음, 연기, 몸놀림 모두 완벽하다.
작품 자체가 초연이라 사전 정보가 매우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태율 배우 역시 신인이라서 어떤 배우인지 전혀 정보가 없던 터라 관극 전까지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던 배우였다.
(애초에 두 번의 관극을 모두 정동화-유태율 페어로 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티켓 오픈 당시 좌석이 남은 회차에서 예매하려다 보니 유태율 배우 회차뿐이었는데 아마 유태율 배우가 정보가 너무 없는 신인이었기 때문에 좌석이 남았던 거라 생각한다.)
진심으로 이 배우는 무대 위에서의 매력과 에너지를 직접 봐야만 한다.
인간이 내뿜는 바이브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유태율 배우의 무대를 보라고 꼭 추천해주고 싶다.
<사족>
'CJ아지트 대학로'는 좌석수가 200석이 채 되지 않는 소규모 공연장이다. 더불어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가 여느 중소극장보다도 훨씬 가깝기 때문에 무대의 전체적인 관람을 하기 위해서는 2층 좌석이 시야 확보에 유리하다. '트레드밀'의 무대 구성이 2층으로 되어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2층 관객석도 1층 관객석과 동일한 관람료를 책정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다만, 배우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무대석과 1층 좌석이 최적화이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도 가깝지만 이 작품의 초반부터 커튼콜까지 배우들이 수시로 1층 객석의 관객들과 아이컨택을 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존재하기 때문.
2022년 10월 9일 14시 공연 커튼콜 영상 링크.
(해당일자는 이벤트성으로 커튼콜 촬영이 허용된 회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