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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Apr 29. 2022

인천 숭의동 109번지

인천 숭의동 109번지, '전도관 골목'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종착역에 거의 가까울 때쯤 해서 '도원역'이 있습니다. 제국주의 강제 개항시기에는 미 공사관이었던 알렌의 별장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한 전도관이 있는 동네입니다. 6.25 한국전쟁 때 북쪽에서 내려온 피난민들과  박정희 정권의 탈 농촌 정책과 맞물려, 서울의 위성도시로 성장한 인천, 부천의 공업지대에 취직하려고 지방에서 상경한 젊은이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곳이 '인천 숭의동 109번지'입니다. 인천에 흔한 달동네 중 한 곳이면서, 1980년에 박태선 장로라는 사람이 세운 전도관이란 종교 단체가 크게 성공함으로써 '전도관 골목'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 지금은 폐허로 남은 전도관 >

달동네와 빈민가의 이미지가 안좋은 부분이 있던 것처럼 '숭의동 109번지' 낮에도 지나가기를 꺼려 하는 동네였습니다.  안에 사는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었지만, 외부에서는 실상과는 달리 오해하던 곳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재개발 열풍이 불어 마을을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은 외지인들에게 집을 팔고 떠나 거의 폐허나 다름없던 곳이었죠. 한때 의욕적인 젊은이들과 시정이 맞물려 '원도심 활성화' 해보겠다고 했던 곳입니다. 문화마을로 만든다고 벽화작업에, 젊은 예술인들의 입주에, 한동안 북적거렸었죠. 하지만 모든 원도심 활성화 운동이 그렇듯, 시의 지원이 끊어지고  후에 의욕적이던 젊은이들이 떠나고 진실한 운동가들만이 자리를 지키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그들마저도 떠나고 없습니다.


그리도 오래도록 끌어오던 '전도관 골목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려나 봅니다. 작년 10월 경에 촬영을 갔을 때, 이집 저집 빨간 X 표시와 함께 재개발을 위한 공가임을 나타내는 안내문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다 부서지겠구나' 했는데 계절이 바뀌고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고 있네요. 다시 찾은 숭의동 109번지, 일명 전도관 골목이었고, 한때는 우각로 마을이었던 이름이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습니다. 빈집들이 많다 보니 범죄 우려도 있고, 넘치는 쓰레기와 냄새 등 빨리 해결돼야 할 공간임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딘지 허전합니다. 시간 날 때마다 걸으며 사진을 찍었던 정든 공간이 사라진다니 더욱 그러합니다.


구불구불한 골목 어디에선가 아직도 어린이들이 웃으며 뛰어나올 것 같습니다. 창문을 넘어 나오는 도란도란 소담스러운 이야기도 들리는 듯합니다. 시원한 바람이 돌아 나가는 골목 어귀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땀을 식히고 앉아 계실 듯합니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보존가치가 없으면 당연히 부서지고 새롭게 변화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 되어버린 낡고 비좁은 원도심이 그렇고요. 하지만 그 시절에는 골목이 같이 아이들을 키우고, 골목이 같이 삶을 살아내던 공간이었습니다. 힘들고 가열찬 시대를 이겨내는 공동체였었고요. 오랜 시간 골목에 살아보지 못했지만 허전함을 달랠 수가 없네요.


제가 골목길, 달리 말하면 구도심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색과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입니다. 번듯한 신도시의 황량함과는 달리 구도심의 골목은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즘 새롭게 채색되는 벽화나 동화마을이 아니라 원주민들이 살면서 만들어낸 색입니다. 이곳에서 삶을 영위했던 분들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흐린 날의 빛은 색을 표현하기에 좋습니다. 굳이 색보정을 하지 않아도 색이 살아납니다. 색을 포인트로 사용할 것인지, 전체적인 느낌으로 만들 것인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두 시간여에 걸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공간을 천천히 걸으며 사진과 영상을 촬영합니다. 아직 떠나지 못하고 남아 마주친 분들께 '가란다고 이제 와서 어디로 갈 거냐'라고 하는 한탄을 듣습니다. 저보고 '뭐 볼 게 있다고 그렇게 촬영하냐'라고 하시면서도 선뜻 모델이 되어 주십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도원역을 건넙니다. 이제 막 지어진 고층 아파트와 인천 축구 전용 경기장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비 갠 하늘이 청량하지 못하고 구름이 잔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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