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사진을 ‘눈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카메라는 그냥 도구일 뿐이고, 나는 그 도구를 조작해서 이미지를 만든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골목길을 걷다 낡은 벽 앞에 선다고 해보자. 벽에 난 금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손이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어올린다. 몸이 앞으로 기울고, 무릎도 살짝 구부러지며, 팔이 움직인다. 셔터를 누르는 동안 다양한 감각이 함께 작동한다.
이때 단지 ‘눈’만이 움직인 게 아니다. 골목 안의 축축한 공기, 벽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시멘트 냄새,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보도블록의 울퉁불퉁함까지, 이 모든 감각이 동시에 깨어난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이런 감각의 총체를 ‘몸’이라고 불렀다. 몸은 단순히 머리가 명령하면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오히려 몸은 우리가 세상과 만나는 통로이자, 이미 세계와 깊게 연결되어 살아가는 존재다.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군인이 있다. 그런데 없는 다리가 간지럽다. 없는 발가락을 움직이려고도 한다.
이런 현상은 경험론으로 설명이 어렵다. 자극이 없으니 감각도 없어야 하는 게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성주의로도 풀 수 없다. 환자는 자신의 다리가 없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 결코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다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몸은 늘 세계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몸은 세계 한가운데서 무언가를 하려는 성향을 갖는다. 환각지를 겪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의 몸은 여전히 ‘걷기’라는 행위를 하려고 한다. 비록 다리가 없어도 말이다. 사진으로 비유하면, 오랫동안 필름 카메라를 쓴 사람이 디지털 카메라로 바꾼 뒤에도 무심코 필름 와인딩 레버를 손으로 더듬는 것과 같다. 몸이 그 기억을 품고 있기에 자연스레 행동이 나온다.
춤을 처음 배운다고 생각해보자. 강사가 "오른발 앞으로, 왼발 옆으로, 회전, 손 위로"라고 설명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돼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발은 엉키고, 팔은 한박자 늦게 올라간다. 며칠쯤 지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제 "오른발 앞으로"를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이 먼저 나간다. 몸이 스스로 춤의 움직임을 익힌 것이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이런 현상을 "운동의 의미를 몸으로 파악함"이라고 했다. 몸이 직접 의미를 깨닫고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사진 찍을 때도 비슷하다. 처음 카메라를 잡으면 조리개가 어디 있는지 찾느라 한참 헤맨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눈은 피사체에 가 있는데 손가락은 이미 자연스럽게 다이얼을 돌리고 있다. 생각보다 몸이 훨씬 빠르게 적응한다.
후설은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다"라고 했다. 즉, 의식에는 늘 어떤 대상을 향한 지향성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메를로퐁티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몸은 언제나 어떤 과제를 향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몸에도 지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시장 골목을 걷고 있다고 해보자. 채소를 파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이때 당신의 몸은 이미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울고 만다. 발걸음이 느려지고, 손은 저도 모르게 카메라 쪽으로 움직인다. 이 순간 당신의 몸은 "저 할머니를 찍어야겠다"라는 과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어쩌면 의식이 "찍어야지"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사진가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 순간"도 머릿속 계산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몸이 그 순간을 먼저 감지한다.
19세기에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다. “이제 드디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복사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화가들은 당황했다. 폴 들라로슈는 “이제 회화는 끝났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실제로 회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왜일까? 사진이란 게 사실 세상을 그저 복사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나다르와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초상사진이다. 나다르의 사진을 보면, 얼굴의 주름이나 옷 단추, 배경의 커튼까지 모두 선명하다. 한 치의 흐림도 없이 모든 것이 또렷하다. 하지만 정작 사진 속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기 어렵다. 꼭 석고상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반면, 카메론의 사진은 흐릿하다. 초점이 정확하지 않고, 윤곽이 번져 있다. 그런데도 그 안에 담긴 사람은 살아 숨 쉰다.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 성격, 삶의 자취까지 고스란히 보인다.
당시 평론가들은 카메론을 향해 “기술이 형편없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카메론은 이렇게 반문했다. “초점이 뭐죠? 초점이면 그게 초점이지, ‘올바른 초점’이 따로 있나요?” 카메론은 단순 재현이 아니라 자기만의 ‘표현’을 선택했다. 그 덕분에 그의 사진은 오늘날까지도 강렬한 생명력을 지니고 남아 있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스타일’은 화가가 머리로 의도해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스타일이란, 화가가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그 고유한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정작 화가 자신은 그걸 잘 모를 때가 많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그 특징을 먼저 알아본다.
당신 친구가 백 명이 늘어서 있는 버스 정류장에 있다고 해보자. 당신은 멀리서 뒷모습만 봐도 단번에 그 친구임을 알아챌 것이다. 어깨 기울기, 고개 각도, 손을 두는 습관처럼 소소한 것들이 모여 ‘그 친구만의 느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진가의 스타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항상 피사체와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어떤 이는 늘 위에서 내려다본다. 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역광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어둠 속에서 작게 스며드는 빛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들은 일일이 머리로 계산해서 선택하는 게 아니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방식이 쌓여서, 그 사람의 스타일이 된다.
메를로퐁티는 의미가 내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의미는 오히려 세계와 내가 만나는 순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촛불에 손을 데인 아이에게는 촛불이 단순히 '뜨거운 것'이 아니라, '멀리해야 할 것'이 된다. 아이는 머릿속으로 "촛불=고온"이라고 개념화하지 않는다. 이미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색깔도 마찬가지다. 빨간색을 보면 저절로 몸이 긴장하고, 파란색 앞에서는 자연스레 이완된다. 이런 반응은 우리가 문화적으로 배우기도 전에 벌써 몸이 느끼는 일이다.
사진가가 세계를 경험할 때도 비슷하다. 당신이 골목을 걷다가 낡은 대문 앞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고 해보자. 그 순간,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어느샌가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도대체 왜 멈췄는지는 모른다. 다만 마음 한켠에 ‘뭔가 있다’는 감각만이 스며든다. 뭐가 있는지 딱히 설명할 순 없어도, 몸은 이미 알아챈다. 손이 저절로 카메라를 들고, 무릎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진다. 그리고 셔터를 누르게 된다.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 저 고양이 등 뒤의 담벼락에 난 금과 고양이 수염이 나란히 평행을 이루고 있었구나. 빛이 대문 위 틈 사이로 들어와서 고양이 한쪽 눈만 밝혔던 거였구나.”
당신은 촬영하는 그 순간에는 이런 걸 몰랐다. 하지만 이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이렇게 말했다. “스타일은 지각에서 비롯된 욕구다.”
르누아르는 바닷가에 앉아 있다. 앞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지만, 그는 그 바다 자체를 화폭에 옮기지 않는다. 대신 여인들이 목욕하는 장면 한 귀퉁이만 계속해서 고친다. 무엇을 바꿀까? 바로 물의 색이다. 그 색은 어디서 온 걸까? 바로 눈앞에 있는 바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바닷물의 푸른빛이 그림 속 시냇물로 녹아든다. 바다가 르누아르가 꿈꾸던 ‘물의 전형’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사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잎이 바람에 살랑인다. 그런 순간에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뭔가 마음속에 와닿는다. 이후 집에 돌아와 한 달 전 도심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 본다. 빌딩 유리창에 비친 하늘이 찍힌 사진이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오늘 숲에서 느꼈던 감정이 떠오른다.
무엇이 둘을 이어줄까? 말로는 딱 집어 표현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안다. ‘빛이 무언가를 뚫고 들어오는 그 느낌’이다. 이제 당신은 일상에서 ‘빛이 통과하는 장면’들을 자꾸 찾게 된다. 커튼 사이로 스며오는 아침 햇살, 한지문 뒤로 비치는 그림자, 유리컵에 담긴 물속에서 부서지는 빛 등등. 이렇게 당신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