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가 말하는 ‘스투디움’은 사진을 읽는 배경이나 맥락쯤 된다. 교양이나 정보, 시대의 감각에 익숙해진 눈이 사진에서 끌어올리는 것, 이 사진에서 내가 생각한 스투디움은 반원형 그림자였다. 광장 어딘가에 둥근 구조물이 있다는 사실, 그 구조물이 햇빛을 받아 바닥에 활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는 점. 이런 건 누구나 쉽게 읽어낸다.
‘푼크툼’은 예고 없이 툭 들어온다. 왼편 남자의 그림자가 바닥에 손을 쫙 펼치고 있었다. 실제 손이 아니라, 가방을 매고 있는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오른쪽 상단에 있는 두 발과 대각선으로 마주본다. 손과 발, 몸의 양끝이 프레임 안에서 조용히 당기고 있었다. 반원형 그림자가 두 사람을 우연히 한데 묶어 놓는다. 아무 의도 없이, 그저 우연히. 광장이란 원래 그렇다.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같은 빛 아래, 잠시 같은 프레임 속에 들어온다.
바닥의 격자 타일 이음새가 수평과 수직으로 광장 전체를 촘촘히 나누고 있는데, 그 위를 반원형 곡선이 휘감는다. 직선과 곡선이 한 바닥에 겹쳐진다. 격자는 사람이 만든 질서고, 그림자는 해가 만들어낸 흔적이다. 이렇게 두 가지 다른 원칙이 교차하는 곳에서 한순간이 만들어진다. 그중 무엇이 더 진짜일까?
이 사진은 다시 찍을 수 없다. 서울역 광장에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가지만, 이런 배열이 나오는 순간은 그날 그때 한 번뿐이었다. 푼크툼이 마음을 찌르는 것도 그래서다. 이제는 사라졌다는 사실, 그 잠깐의 흔적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