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끝나고 수강생 한 분이 남았다. 자신의 사진을 꺼내면서 말했다.
'사진 좀 봐주세요. 왜 밋밋한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봤다. 초점은 맞았다. 노출도 적절하고, 구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진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고 있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사진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수 있다."
사진이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찰스 샌더스 퍼스의 기호 삼분법, 아이콘/지표/상징을 꺼낸다. 이것은 학술 용어가 아니라 도구다. 사진을 읽는 언어다.
카메라는 세계를 재현한다. 그래서 사진은 아이콘(닮음의 기호)이다.
어느 날 수업에서 같은 피사체를 다른 앵글로 찍은 사진 두 장을 나란히 뒀을 때, 수강생들이 말했다.
'같은 사람인데 완전히 달라 보이네요.'
정면에서 찍은 얼굴은 균형이 잡혔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얼굴은 위압적이었다. 같은 사람의 같은 닮음인데, 선택된 각도가 가른 의미를 만들었다. 닮음도 선택이다. 어느 닮음을 가져올 것인가가 이미 주장이다.
지표는 원인이 남긴 결과다. 발자국은 사람을 닮지 않았다. 사람이 지나갔기 때문에 생긴다. 그 인과 관계가 의미를 만든다.
빛이 센서에 닿아 반응을 일으킨다. 그 반응의 결과가 사진이다. 사진이 찍혔다는 것은 그 빛이 그 순간에 실제로 있었다는 물리적 증거다.
"사진은 '이것이 있었다'라는 증거다. 이것이 사진의 근원적인 힘이다."
그래서 사진 속 주름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갔다는 지표다. 젖은 아스팔트는 비가 왔다는 지표다. 손에 난 굳은살은 반복된 노동자의 지표다. 이 흔적들이 사진에 시간을 불어 넣는다. 지표를 읽는 눈이 생기면, 사진이 표면이 아니라 깊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상징은 닮음도 인과도 없다. 그냥 그렇게 쓰기로 한 것이다. 흰 드레스가 결혼식에서 특정 의미를 갖는 것은 흰색이 그 의미와 닮아서가 아니다. 교복이 학생 신분을 가리키는 것은 교복이 학생을 닮아서가 아니다. 공동체가 그 기호와 의미를 연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상징을 쓴다는 것은 관객을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약속을 공유하는 관객에게는 즉각적으로 통한다. 그 밖의 관객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손을 찍은 사진을 생각해보자. 그 사진은 그 손과 닮았다. 굳은살이 있고 마디가 굵다. 주름이 깊다. 이것들은 노동과 시간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손은 한국 사회에서 특정 의미를 상징하도록 오랫동안 쓰여왔다.
"강한 사진은 대개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한다."
수강생에게 그 밋밋한 사진을 다시 물었다.
'이 사진 안에 어떤 흔적이 있나요?'
한참 보다가 말했다. '없는 것 같아요.'
바로 그것이었다. 닮음만 있고 흔적이 없었다. 아이콘은 있지만 지표가 없었다. 세계의 어느 표면을 가져 왔지만, 그 표면이 무언가를 가리키지 않았다.
채수창사진아카데미에서는 사진기호학을 입문부터 심화까지 다루는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이론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다르게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