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누구를 앞에 두고 쓰는가?

by 채 수창

적거 노트를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은 안다. 막막한 빈 페이지를 앞에 두고, 자신이 왜 이 사진을 찍었는지를 언어로 꺼내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이상한 요구인지를. 이미지는 말하기 싫어서 이미지가 된 것인데, 그것을 다시 글로 바꾸라고 한다.


하지만 작가 노트가 어려운 거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쓰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른 채 시작하기 때문이다."


전시장 벽 위의 글과 심사위원 앞의 서류는 모양이 같아도 다른 물건이다.

전시형 작가 노트는 관객이 작품을 이미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읽는다. 빛이 지나가는 방향, 인물의 각도, 배경이 잘린 경계선, 이것들을 관객은 직접 보고 있다. 이 상태에서 작가가 '나는 인간의 소외를 탐구하고 싶었다'라고 쓰면, 그 문장은 작품을 설명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관객의 시선 위에 덮개를 씌운다. 보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스스로 볼 수 없게 된다.


전시형 작가 노트에서 좋은 문장은 관객을 작품 안으로 더 밀어 넣는다. 설명 대신, 작가가 그 장면 앞에 서게 된 사정을 짧게 건드리면 된다. '새벽 3시에 그 골목을 지나갔다'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그 골목이 어떤 시간대의 공기인지를 안다.


공모전형은 다르다.

심사위원은 작품을 보기 전에 글을 읽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글만 보고 작품을 상상해야 한다. 이 조건에서 작가 노트는 이미지의 대리인이 된다.


설득이란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 작업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를 순서대로 밝히는 것이다. 개념이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으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촬영 방식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라는 수준으로만 서술되면, 심사위원은 그 작업이 어떤 사진인지 모른다.


공모전형 작가 노트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연작의 논리다. 왜 이미지들이 함께 놓이는가? 시리즈 전체를 꿰는 실 하나를 보여줘야 한다.


같은 작업을 두 번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전시형은 관객의 해석을 열어 두는 글이다. 공모전형은 심사위원의 판단을 돕는 글이다. 하나를 수정해서 다른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독자가 달라지면 문장의 무게 중심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 작업에서 무엇을 원하는지가 글을 쓰는 동안 드러난다."


@채수창사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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