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를 써야 하는 날이 있다. 전시 제출 마감일이거나, 공모전 신청서 마감 바로 전날인 경우도 있다. 사진은 이미 다 준비돼 있고, 편집도 끝났으며, 제목도 정해졌다. 그런데 막상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슬그머니 검색 창을 열고, 다른 작가들의 작가노트를 찾아 읽기 시작한다. ‘나는 이 작업에서 ~을 탐구합니다’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줄줄이 보인다. 읽다 보면 서로 닮아 있다. 그 비슷함에 안심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답답해진다.
막히는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첫 문장을 작업 전체의 요약으로 착각한다. 몇 달에서 길게는 일 년 넘게 해온 작업을 한 줄에 담으려니 부담이 크다. 그 압박감에 결국 손이 멈춘다. 사실 요약은 글의 마지막에나 가능한 일이다. 시작부터 요약으로 접근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막히는 것이다.
첫 문장은 요약이 아니다. 그저 ‘문’ 하나일 뿐이다.
관객이 내 작업으로 들어오는 입구. 그게 전부다. 그 문이 너무 좁으면 들어올 수 없고, 반대로 너무 넓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맨다. 작업 전체를 설명하려 하면 입구가 아니라 지도가 되어버린다. 관객은 지도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한번은 수업에서 한 명이 찾아와, 작가노트 첫 문장을 쓰지 못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 작업 이야기를 어떻게든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 공장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어요. 그 아파트를 5년 동안 찍었어요." 주저 없이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말해줬다. 그게 바로 첫 문장이라고.
“아버지 공장이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나는 그것을 5년 동안 찍었다.”
먼저 장면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사라졌으며, 어떤 일이 반복되었는지. 그 장면이 입구가 된다.
때로는 질문도 입구가 될 수 있다. ‘낯선 도시의 노인들은 왜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가?’ 정답이 없어도 괜찮다. 관객이 그 질문을 가지고 작품으로 들어가면 된다.
모순도 입구가 된다. ‘사진을 찍을수록 그 장소가 더 흐려졌다.’ 이런 충돌이 관객의 호기심을 끈다.
‘~에 관한 작업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장이 밋밋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설명이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설명은 관객 바깥에 머물고, 장면은 관객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인다.
만약 작가노트 첫 문장에서 막혔다면, 지금 쓰려는 문장이 요약인지 입구인지 먼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만약 요약이라면, 아직 글을 쓸 단계가 아니다. 글의 마지막에서 돌아와야만 제대로 쓸 수 있다.
입구라면, 장면 하나로 시작해보면 된다. 그 장면을 고르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게 바로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채수창사진미학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