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나도 고마워요.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요.
행복해요.
나도 행복해요.
그런데 행복하다는게 무슨 뜻인지 알아?
응, 알아 그건 착한 뜻이야.
나의 꽃 같은 청춘은 삶의 이유를 찾아 헤매느라 바빴다. 사는 게 힘들고 그다지 좋은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절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왜 사느냐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되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글쎄, 몰라, 살아 있으니까 사는 거지’ 등이었다. 만족할만한 답을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러다 보면 내가 알아내지 못한 삶의 이유를 알려주는 누군가를 적어도 한 명쯤은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대부분이 불만족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아무리 공부를 해도 만족스러운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에는 다니는 직장마다 일복이 터지고 적성에 맞지 않는 데에다 월급까지 적었다. 연애는 늘 삶의 걸림돌이 되었고 꿈은 꿀수록 내게서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학교에서 몇 등 하니? 월급이 얼마니? 애인은 있니? 뭐 하는 사람이니? 꿈이 뭐니? 앞으로 뭐 하고 살 거니?’ 등의 질문을 많이 받는데 뭐 하나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니 점점 말수가 줄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가 고행이라고 했던가. 이 세상에 내 의지대로 되는 게 과연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불안한 20대를 보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이자 주부로 살아가는 삶 역시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며 내 앞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불안한 청춘이 갑자기 딴딴따단 노래와 함께 한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는 주부가 되라니…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는 처지에 아기를 업고 남편과 가족을 챙기려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주부이자, 엄마이자, 며느리이자, 아내라는 자리는 버겁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나를 보며 고맙다고 말했다. “응? 고맙긴 뭐가?”라고 되물으려는데 아이가 나를 보며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예 한 술 더 떠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내가 뭘 어쨌는데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하고 신기해서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엄마를 보며 웃고 있는 아이의 눈빛에는 ‘엄마 때문에
살아요’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나로 인해 사는 아이,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아이. 누군가에게 삶의 이유가 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이유가 충분히 채워지는 듯했다. 엄마인데도 엄마가 되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옛 시절만 그리워하는 내가 미안해서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내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하다. 여태껏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질문, 왜 사는지에 대한 답변을 내 아이에게서 듣는다. 행복해서, 행복하고 싶어서, 아이와 함께 행복해야 하니까 산다.
행복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응, 알아. 그건 착한 뜻이야.
나도 아직 행복하다는 말의 뜻을 잘 모르는데 아이는 행복하다는 말뜻을 명확하게 설명해줬다. 착하고 좋은 말,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꾸자꾸 해주고 싶은 말. 이 설명이면 족하지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언젠가 아이가 자라 삶의 이유를 찾아 헤매는 시기가 오면, 아이에게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은 새로운 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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