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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연 Mar 14. 2018

내일 혼났어요

갑자기 왜 울어?

밥이 맛이 없어?

 …

밥 먹다 말고 왜 우는 거야?

… 혼났어요.

응?

엄마한테 혼났어요. 그래서 속상해서 울어요.



밥을 먹던 중이었다. 숟가락을 막 떠서 입에 넣으려는 순간 아이가 갑자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밥이 그렇게 맛이 없었나? 아니면 먹기 싫은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뿐인데, 이와 같은 이유로 갑자기 운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우는 이유를 물으니 아이는 엄마에 혼이 나서 속이 상해 운다고 말했다.


내 고민은 더 깊어졌다. 도대체 언제 혼이 난 거지? 아이에게 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적어도 이날만큼은 아이와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스로 뿌듯했었다. 밥 먹는 일도 수월하게 잘 되던 상황이라 속으로 ‘딱 오늘만 같아라.’ 하며 소심한 주문까지 외웠었. 그러니 아이의 말은 나를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넣었다.


언제 엄마한테 혼났어?

내일…


아이는 본격적으로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이는 아직 어제, 그제, 엊그제 등의 표현을 잘 모른다. 어제도 내일이고 내일도 내일이다. 아이는 말했다. 내일 밥 먹다가 엄마한테 혼이 났다고.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내일 밥상에서 화를 냈다는 아이의 기억은 나에게는 아득하거나 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특별히 별 표시를 해두며 따로 기억해둘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달랐다. 언젠가 내가 밥상에서 아이에게 화를 냈던 많고 많은 일 중에 한 가지가 오늘 밥숟가락에 얹어진 밥을 통해 다시금 떠올랐던 것이다. 아이는 문득 속상함이 밀려왔다. 어쩌면 서러움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눈이 빨개질 정도로 목청을 높여 울었다. 콧물이 잔뜩 흘러 입으로 흘러들어갔다. 아이가 쥐고 있던 숟가락이 아이의 흐느낌에 맞춰 훌쩍거렸다. 숟가락 위에 얹어져 있던 밥과 반찬이 살포시 떨어져 내렸다.


아기가 말을 하지 못하던 때, 가끔은 엄마의 목소리에 따라 더 깊게 울곤 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이유 없이 우는 날도 있었다. 이제 보니 알 거 같다. 아이도 나처럼 지나가버린 추억 때문에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엄마의 말 한마디에 이토록 속상했는데 속상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으니 그리도 서러웠던 거구나. 아이는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서라도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내일 화낸 일을 사과해야 했다. 아이는 한없이 눈물을 쏟아낸 후 말했다.


이제 기분 괜찮아요.


그리고 빨개진 눈과 코로 다시 밥을 먹는다.

어쩐지 내 밥숟가락이 자꾸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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