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사제와 정조대왕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조선 제 22대 왕이자 세종 다음으로 조선의 성군으로 존경받는 정조대왕은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할아버지였던 영조대왕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고 붕당은 세력 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오죽하면 정조대왕이 세손 시절 때 권신들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정조대왕은 유학과 실용주의의 조화를 꾀하는 현실적인 정치를 펴나갔고 무엇보다 백성들을 먼저 생각했으며 신분고하를 막론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종대왕 이후 가장 평화롭고 문화가 꽃피던 시기였다.
정조대왕의 주요 사업 중 하나였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왕위 추존이 이루어지면서 사도세자는 장조로 추존되었고 수원에 있던 사도세자묘는 융릉으로 격상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융릉 주변에 었던 수원 지역을 자신의 정치 이상을 펼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추진한다. 이때 세워진 건축물이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수원화성'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외에도 수원화성은 야경이 아름다워 야경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에게는 거의 출사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수원의 상징이자 정조대왕의 효심과 혼이 서려있는 수원화성의 야경을 보러 떠나보자.
정조대왕은 수원을 조선의 새 수도에 버금갈 정도로 전략적 도시로 건설하고자 했다. 수원화성의 4대문은 한양도성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며 특히 수원화성의 정문이자 북대문인 '장안문'은 한양도성의 정문이자 남대문인 '숭례문'보다 더 크다. 보통 성의 정문은 보통 남문인데 왜 수원화성은 북문이 정문일까? 왜냐하면 조선의 수도인 한성(지금의 서울)이 수원보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국왕이 수원으로 온다면 한성의 남대문인 숭례문을 지나 남쪽으로 행차하면 수원의 북쪽에 제일 먼저 당도하기 때문에 수원의 북대문에 해당하는 문이 수원의 정문이 된다. 그래서 수원화성의 북대문인 '장안문'이 곧 정문이 되는 셈이다.
장안문 옆에 있는 북동적대에서 찍은 모습이다. 원래 맞은편에 있는 '우리은행' 건물 옥상이 야경 촬영 최고 뷰포인트인데 옥상문이 잠겨있을수도 있다. ㅠ
장안문을 비롯해 수원화성의 4대문은 대문 앞에 방어 시설인 옹성이 둘러쳐진 구조다. 아래 사진에서는 안보이지만 내 뒤에는 옹성문이 있다. 그래서 정문이 2개인 셈이다. 이런 구조로 지은 이유는 방어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수원화성 일주 출발점은 장안문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서대문인 '화서문'으로 향했다.
수원화성에는 대문과 대문사이에 포루와 망루가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덧 수원화성의 서대문인 '화서문'에 도착했다. 화서문은 현재 보물 제 40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앞에서 본 장안문과 달리 옹성 한 쪽이 터 있다. 그리고 사진상으로는 왼쪽이지만 화서문 오른쪽에 '서북공심돈'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다. 서북 방향에 위치한 공심돈인데, 공심돈이라는 구조물은 말 그대로 '속이 비어있는 돈대'라는 뜻인데 수원화성에서만 볼수 있으며 공심돈 내부에 화포를 배치해서 포를 발사할 수 있다. 뒤에 볼 '동북공심돈'은 동북쪽에 위치한 공심돈인데 '소라각'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드디어 팔달산 정상이자 수원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장대인 '서장대'에 도착했다. 장대는 '지휘관이 군사를 지휘하는 곳'인데 정조대왕께서 이 서장대에 올라 군사 훈련과 열병을 참관했다고 한다. 특히 서장대에 걸린 현판 '화성장대'는 정조대왕이 직접 썼다고 한다.
무엇보다 서장대에서 내려다 본 수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원화성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장대다. 수원화성이 그만큼 군사적 기능을 효율화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인 것 같다. 그리고 서장대 아래로 화성행궁이 자리하고 있다. 화성행궁은 국왕의 임시 거처인데 이 곳에서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성대하게 열고 이와 함께 나이드신 어른들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었다. 이는 정조수원화성행차도 병풍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오늘날까지 효심과 백성을 아끼는 리더의 귀감을 보여주고 있다.
서장대를 내려와 계속 걸으니 어느 덧 남대문인 '팔달문'에 도착했다. 팔달문도 북문인 장안문처럼 옹성이 둘러쳐저 있다. 하지만 아쉬웠던건 팔달문만 딱 끊어져 있어 문만 덩그러니 있는데다 차들이 바삐 다니니 사진찍기도 꽤 힘들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대신했다. 팔달문을 지나 남수문쪽으로 향하면 지동시장이 나오는데 이렇게 시장에서 막걸리 한사발 드시는 정조대왕의 동상이 있다. 성곽이 끊어지는 듯 싶더니 남수문을 시작으로 다시 성곽길이 이어진다. 남수문은 아마 수원화성 구조물 중에서 가장 수난(?)을 당한 구조물일 것이다. 홍수로 유실되었다가 일제가 수원 도심 확장을 위해 아예 없애버렸다. 그러다 2012년에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남수문을 지나 동대문인 '창룡문'으로 향했는데 중간에 봉수대인 '봉돈'을 볼 수 있다. 봉수대는 옛날 주요 통신 수단 중 하나라는 건 알고 있으리라 본다. 이번에는 성곽 안으로 들어와 걸었다. 그리고 창룡문에 도착했다. 창룡문 주변에는 동장대인 '연무대'가 있고 소라각이라 불리는 '동북공심돈'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없어 걸음을 빨리 재촉했다. 저 멀리 동북공심돈과 '연무대' 지붕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연무대 주변에 국궁장이 있는데 주간에 국궁 체험도 할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연무대도 위에서 본 서장대 처럼 동쪽에 있다 하여 '동장대'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주로 군사 훈련을 한 듯 하다.
동북포루를 지나니 이제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조물인 '방화수류정'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왠지 동북포루일대의 성곽길이 아름다워 보였다. 기분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방화수류정에 도착했다. 동북각루라고도 하는데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조물로 손꼽히고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다.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따라 간다'라는 뜻을 가진 방화수류정은 십자 모양의 지붕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다 평시에는 휴식 공간, 전시에는 정찰 및 감시 기능을 담당하였다. 방화수류정 앞에 있는 용연은 이 주변의 경치를 한껏 더 올리고 있다. 봄날에 꽃잎이 날리고 버드나무가지가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그야말로 이상향이 바로 여기일 듯 하다.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의 모습이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이제 방화수류정을 지나 바로 옆에 있는 화홍문으로 향했다.
조금만 걸으면 수원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을 볼 수 있다. 조금 전에 남수문을 보았는데 북쪽 수문인 화홍문은 수원 8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유명하다. 방문 당시에 화홍문으로 흘러내린 수원천의 수량이 많지 않았는데 수량이 풍부하면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모습이 괜찮을 듯 했다. 그밖에도 화홍문은 수문의 역할과 동시에 군사 방어 기능도 담당했다.
이제 화홍문을 지나면 북동포루, 북동적대, 그리고 출발지였던 장안문의 모습이 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듯 했다. 수원화성을 보기 위해 수원을 몇 번 찾았지만 그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는 야경이었지만 맑은 날의 수원화성은 어떨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