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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씨 Mar 21. 2021

과거의 재발견.

빈티지의 시대.

00년도에 발매된 디올의 코트,
90년도에 제작된 폴로의 셔츠,
80년대 리바이스 청바지.
97년도에 태어난 청년의 ootd.

 

 과거엔 몇몇 아는 사람들만 간다던 빈티지, 구제 시장의 2021년도 현재의 풍경이다. 남이 입었던 것 혹은 오래된 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진 현재, 빈티지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이 르네상스 전에 이미 중고 의류는 중고나라를 지나 당근 마켓을 통해 활발히 거래가 되었지만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같은 동네 사시는 '하얀 이불'님께 구매한 나이키 바람막이가 아니다. 빈티지 바이어들이 일본, 유럽 혹은 미국에서 구매해오는 보물들이 주인공이다.


 빈티지라는 단어는 어느 방면에서나 많이 활용되고 또 익숙하다.

 와인의 경우 포도주의 생산 연도를 말할 때 쓸 때에도 쓰이고, 낡고 오래되었지만 그 순간의 미학을 담고 있는 제품을 다룰 때에도 ‘빈티지’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옷, 패션에서 사용되는 빈티지 역시 이와 비슷한데,

 1. 옛 스타일을 재해석한 옷 혹은 구형 방직 등의 옛 방법으로 만들어진 경우는 ‘빈티지 스타일’

 2. 예전에 만들어졌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못하여, 새 상품 그대로 시간이 지난

    ‘데드 스탁(Deadstock)’

 3. 착용의 흔적은 보이지만 이 흔적이 적거나 관리의 상태가 좋은 경우, ‘구제’

이렇게 나뉜다고 보면 된다. (이게 정답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구분은 다른 법이니까)

 결국, 와인의 빈티지에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처럼, 의류에서의 빈티지 역시 단순히 누군가가 입던 옷이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풍파에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진 브랜드의 제품, 시즌의 유행을 가득 담았지만 모종의 이유로 만개하지 못한 제품 그리고 당시 사회적 이슈를 이야기하는 제품 등.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잊혀서 사라졌던 존재들이 다시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미켈레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가 슬금슬금 끌고 올라온 레트로의 유행이 이런 빈티지 스타일의 유행의 불길을 지폈다. 어머니, 아버지 혹은 더 나아가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 때 자랑스럽게 걸치셨을 나팔바지나 가죽 재킷들이 어느새 패션 리더들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고 있는 것이다.

마스크만 쓰셨다면 힙지로에서 봐도 어색하지 않을 패션

덕분에 과거에 유행했던 옷들을 다시 입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는 한 때 잊혔던 작품들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환경문제를 마주한 패션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기도 하다. 

한 명품 브랜드가 팔지 못해서 남았던 재고 의류를 불태웠던 사건이 신문의 사회 문제 켠에 올라오고, 2주마다 옷이 바뀌는 SPA 브랜드는 자원을 낭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해내는 브랜드로 몰매를 맞게 되었다. 주요 소비 계층으로 떠오르는 MZ세대는 현명한 소비를 하기 위해 이러한 문제에 반응하며 대체 소비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과거의 양품, ‘빈티지’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물론 트렌드와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구매층의 인식의 변화 역시 빈티지의 바람을 불러왔다. 10%의 리더와 90%의 팔로워로 차 있던 한국 패션은 10%에서 12%로, 12%에서 16%로 리더가 많아졌다. 아니, 이젠 리더와 팔로워가 아닌 '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 덕분에 수천수만 가지의 요구로 인해 이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기에는 현존하는 많은 브랜드의 옷으로 부족하게 되었고, 이들은 과거의 양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래 설명할 파브리크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70년대 리바이스 데님 트러커 자켓. 지금은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다.


빈티지하면 동묘 시장이 먼저 떠오른다.

 빈티지 매장하면 당연하게 떠오르는 매장의 디스플레이가 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동묘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좌판에 깔려있거나, 혹은 걸려있는 옷을 하나하나 뒤져보며 발 품을 팔아야 양품을 구하던 그런 곳 말이다. 이런 매장의 경우 대부분 어느 정도 패션을 알거나 관심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거나 원하는 제품을 구할 수 있었고(대북곤 씨처럼), 일반인들에겐 그저 암호문 가득한 보물 지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젠 이들의 월척을 배 아파하며 구경만 할 필요가 없다. 온라인은 물론이요, 단순하게 인스타그램에서 조금만 찾아도 새 제품 못지않은 아름다운 양품의 빈티지 옷들이 판매되고 있으니까.


인스타에 빈티지만 쳐도 해당 물품을 다루는 곳은 많다


샵은 빈티지 의류의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빈티지 샵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하면 고가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백만 원 혹은 그 이상의 가격을 호가하던 브랜드의 제품들이 빈티지 샵에서는 30%, 40%의 가격에 팔리니까.


원가 16만엔의 자켓. 구매 가격은 30만원 이었다. (출처: 페이즐리 캣, 필자 구매상품)


 물론 옷이 제아무리 뛰어난 원단과 패턴사에 의해서 기획되고 최고의 공장에서 혹은 재단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한들 시간이 지나면 낡기 마련이니(모 온라인 게임처럼 빨리 낡지는 않겠지만.) 빈티지는 '낡은' 옷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가뜩이나 접촉이 부담스러운 이 시국에 남들이 입었던 옷이라니!)

하지만 이 문제는 당신이 동묘 혹은 구제를 무게 수로 달아서 파는 곳에서 제품을 구매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일 뿐이다. 세탁의 프로들에게 맡겨야 하거나 혹은 가죽 제품이라면 손질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겨나니까. 빈티지 바이어들이 엄선하여 내놓은 제품을 구매했다면 '낡은'이라는 수식어는 빼도 좋다. 이들이 판매하는 제품은 이미 세탁과 케어 과정을 지난 제품들이고, 정말 큰 하자가 있는 제품은 큰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유명인이 입었던 재킷이라던가.) 판매하지 않을 테니.


 남이 입었던 옷이라는 수식어 역시 모든 옷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한정판이라는 말 때문에 혹은 화난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을 얻기 위해 아니면 다이어트해서 입겠다는 이유로 구매했지만 입지 못했던 옷들이 있는가? 그건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이 빈티지 의류의 전 사용자들은 각자의 이유로 옷을 구매했었고, 또 그 각자의 이유로 옷을 못 입고 내놓기도 했다.

빈티지 의류의 산에서 이러한 제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만, 누군가 나 대신 그 옷을 찾아내고 다시 그 옷의 가치를 찾아서 30%의 가격에 판매한다면? 안 살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빈티지 의류를 구매하라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의류들은 빈티지 라지만 10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들도 있다. 어딘가에서 덩어리로 사 왔다면 키로에 만원 이만 원으로 사 왔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직접 구매와 다르게 일련의 과정(세탁, 케어 등)에 들어가는 가격과 마진을 위한 수수료를 무시할 수 없다. 세탁을 하고, 수선을 하고 큐레이팅을 통해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빈티지 판매자들 역시 제품을 통해 이익을 얻어야 할 테니. 고가의 브랜드고 좋은 브랜드라지만 옷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새 옷이 아닌 헌 옷에 선뜻 돈을 내기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또, 특별한 옷 혹은 나만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옷이라지만 빈티지의 특성상 환불과 교환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구매하기 전에 충분히 고민해보자. 소비는 언제나 현명하게 해야 하니까.


 결국 당신이 특별하게 찾는 옷이 있거나 내 마음에 쏙 드는 옷이 나오지 않는다면 혹은 옷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환경에 신경 쓰고 싶다면 빈티지 매장을 한번 둘러보자. 온라인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아직은 위험하니까.




빈티지 샵은 참 많다.

 온라인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둘러보면 여기가 믿음직한 곳인지, 아니면 그럴듯하게 사진을 찍어서 나의 지갑만을 털어가는 곳일지 잘 모른다. 온라인 상으로 구매하면 당연한 일이다. 새 옷도 마찬가지고, 괜히 그 많은 명품 판매 사이트에서 '진품 인증'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니까. 빈티지로의 첫 항해를 시작하기도 전에 침몰할까 걱정되는 당신을 위해, 필자가 직접 구매해봤거나 혹은 방문해본 곳을 아래에 추천하겠다. 여긴 당신 지갑만을 노리는 곳은 아니다. 이야기가 담긴 양품을 파는 곳이니까.


수박 빈티지(Soobaak Vintage)

수박 빈티지의 온라인 스토어(좌측)와 인스타그램(우측)

빈티지 이야기한다면 꼭 한 번쯤은 나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자체적으로 PB상품을 제작하기도 하고(셔츠라던가 재킷 혹은 모자.) 국내에선 보기 힘든 제품(70년대 제품), 명품 잡화(까르띠에 탱크처럼)와 더불어서 생활용품까지 다룬다. 빈티지 치고는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큐레이팅 되어있는 모든 제품이 각자의 프리미엄을 갖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실 이야기와 양질의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지출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옷이 많기 때문에 이런 옷을 싫어한다면 비추.

한 줄로 설명하자면 한국 내에 위치한 가장 멋진 빈티지 갤러리라고 할 수 있다. 집에 걸기 위한 그림을 사는 것이 아닌 내가 들고 다니는 작품을 구매한다는 점이 여타 갤러리와는 좀 다르다는 것뿐.

매일 같이 올라오는 사장님의 인스타그램 내용을 보다 보면 얼마나 빈티지에 진심인지 알 수 있기에, 인스타그램을 조금 염탐한 뒤에 오프라인 매장을 구경 가보자. 매장은 신사동에 있으니 강남에 놀러 간 김에 겸사겸사 한 번쯤 들려봐도 된다. 가기 전에 오픈 날짜를 확인하고 갈 것, 예약제로 실시되는 날도 있으니까.



세컨드 스퀘어(Second Square)

오프라인 매장 (우측), 공식 인스타그램(좌측)

당신이 블레이저, 슈트 혹은 코트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세컨드 스퀘어에 들어서자마자 함박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홍대에 위치한 이 샵은 국내 유명 테일러샵 제품부터 유럽 제품까지, 10만 원부터 100만 원 넘어까지 다양한 남성복과 남성 구두가 가득한 곳이니까. 물론 남성 정장 제품이다 보니 대다수의 제품 가격이 꽤나 비싸다는 점과 여성복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여자 친구 혹은 썸녀와 데이트를 하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지만, 대부분 신품 급의 퀄리티를 자랑한다는 점을 볼 때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업로드로 제품을 확인할 수 있고, 직접 구매를 문의할 수 있지만 온라인 샵이 따로 없다는 점이 살짝 아쉬울 수 있다. 최대한 자주 확인하면서 내가 원하는 제품을 기다리거나, 다양한 제품이 큐레이팅 되어있는 오프라인 샵을 직접 방문해보자.  

수박 빈티지가 이야기가 담긴 프리미엄 제품들이 큐레이팅 된 하나의 박물관 같다면, 세컨드 스퀘어는 마치 호텔 아래에 위치한 비스포크 양장점을 연상시키는 오프라인 샵을 자랑한다. 만약 홍대에 놀러 갈 일이 있다면 한 번쯤 들려보자. 남성복을 정말 좋아한다면 구경만 해도 즐거워지니까.



페이즐리 캣(Paisley Cat)

온라인 스토어(좌측) 공식 인스타그램(우측)

남성복 위주의 빈티지샵. 일본의 제품 혹은 유명 명품 남성복이 가득하다. 랄프로렌, 아르마니, 랑방 혹은 베르사체 등의 이름만 들어도 한 번은 본 것 같은 제품부터 제이프레스, 꼬르넬리아니, 바라쿠타,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와 빔즈처럼 한국에선 생소한 외국의 브랜드 제품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있다. 주로 남성복이 대다수지만 캐주얼한 옷 역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사이즈가 작으면 충분히 여성도 입을 수 있는 제품들이 많다. 제품의 가격대 역시 다양하고 수박 빈티지, 세컨드 스퀘어를 적절히 섞은 맛을 볼 수 있다.

이태원 쪽에 샵이 위치해 있으니 매덕스 피자나 쟈니 덤플링 먹고 배부른 배를 꺼트릴 겸 한번 방문해서 구경해보자.


살롱 더 웨스트 (Saloon the West)

공식 인스타그램

아메리칸 캐주얼, 아메카지, 아니 그냥 웨스턴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하는 곳. 서부 개척 느낌 가득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느낌이 가득하기에 당신이 이런 부류의 제품(가죽 재킷, 거친 데님 제품처럼)을 구매하고 싶다면 꼭 한번 들려보자. RRL 제품부터 정말 놀라울 수준의 제품을 자랑하고 있다. 수박 빈티지가 영국에 위치한 빈티지 박물관이라고 한다면 살롱 더 웨스트는 왠지 텍사스 시내 한가운데에 있을 법한 빈티지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파브리크 스토어(Fabrique Store)

특이한 대문이 반겨주는 온라인 스토어(좌측)와 업로드 제품을 볼 수 있는 공식 인스타그램(우측)

약간 생소한 동네, 문정동에 위치한 빈티지 샵.

페이즐리 샵과 같은 느낌의 빈티지 샵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점은 남성복 대비 여성복 비율이 꽤나 높다는 것. 살롱 더 웨스트, 수박 빈티지, 세컨드 스퀘어처럼 강력한 아이덴티티에 기반된 곳은 아니지만 이를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부담 없이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니 온라인 샵을 구경해보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 역시 파브리크 스토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



올뜨레마레(Oltremare)

빈티지 샵인가? 스러운 메인화면, 하지만 들어가보면 깔끔하다(좌측 온라인 스토어, 우측 공식 인스타그램)

상기한 세 곳과는 다르게 대구에 위치한 빈티지 샵. 서울에 없기 때문에 직접 방문하기 어려워 필자가 직접 방문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배송받은 제품들을 봤을 때 양품을 적절한 가격에 얻을 수 있는 곳임엔 분명하다. 한국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브랜드 남성복 위주로 판매하고 있으며 Sundry와 Oltremare 두 개로 나누어 가격대를 나누어 판매하고 있으니 구경할 제품은 많다.



만약 당신이 정말 원하는 옷이 네이버 쇼핑에서, 무신사에서 혹은 백화점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이번 시즌 눈을 돌려서 빈티지 샵을 한번 뒤져보자. 만약 당신이 직접 보물을 찾기 위한 여행을 추구한다면 샵보다는 창고형 빈티지 매장 혹은 동묘에서, 당신이 여행을 떠날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다면 인스타그램에서 혹은 네이버에서 빈티지 의류를 찾아보자. 긴 시간을 담은 보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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