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삶의 작은 깨달음과 마음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알게 됐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 '싯다르타'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어떤 힘에 이끌리는 듯했다.
첫 장을 넘기기 전까지만 해도, 어렴풋이 <싯다르타>는 석가모니의 일대기 중 일부를 썼겠구나 생각했다. 석가모니의 이름이 고타마 싯다르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책에 석가모니가 등장하긴 하지만 짧게 나온다. 석가모니와 이름이 같은 다른 인물, 싯다르타가 주인공이다. 이름이 같다는 건 큰 상징이다. 결국 모두가 부처이고,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싯다르타도 삶의 과정 속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된다.
소설 <싯다르타>는 고요하다. 글도, 내용도, 흐름도 모두 고요하다. 강처럼 잔잔하다. 소설로 표현된 헤르만 헤세의 철학도 고요하고 잔잔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도 고요해졌고, 가슴 떨림도 잔잔해졌으며,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문득문득 지나갔다. 새벽녘 영혼의 맑은 강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깨닫는다는 건 나 자신이 이뤄나가는 것이다. 깨달음은 내가 느끼고 사유하고 공부하며 알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100명에게는 100명의 깨달음이 있다. 하지만, 나 홀로 깨달을 수 있을까. 산속에 홀로 살지 않는 한,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고 생활하고 살아가면서 느낄 수밖에 없다. 삶 자체가 뜻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즐거운 삶을 회피하지 않는 것, 사회와 힘들지만 상호작용하는 것,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치열하게 찾아나가는 것에서부터 깨달음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고 생활 속 나에게 있다.
최근에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소설 같았기 때문이다. '픽션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나에게 <싯다르타>는 고요하면서도 울림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다시 말하고 있었다. 작가가 지닌 깊은 내면의 철학이 이야기로 쓰였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문장이 감명 깊었지만, 경청을 말한 문장을 공유하고 싶다. 나에게 우리에게, 듣는다는 건 매우 깊이 있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