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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맘 Jul 30. 2020

귀농,  원하지 않았던 시작

프롤로그


9년 전 어느 날, TV를 유심히 보던 남편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우리 귀농할까?"

"귀농? 그래. 뭐 그것도 괜찮지."


수업 준비를 위해 부엌 의자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별 뜻 없이 남편을 향해 대답했.


무얼 보길래 귀농 운운하는 거지?

궁금해진 는 TV로 눈길이 갔다.


TV에는 야산에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어떤 농부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야산을 뛰어다니는 닭의 깃털에서는 윤기가 흘렀고, 그 닭을 돌보는 농장주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십여 년 전에 시골로 내려가 닭을 키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달걀을 택배로 보내 판매하고 있으며 없어서 못 판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도 애들 좋은 거 먹인다면서 당신이 유정란만 사잖아. 우리도 시골 가서 닭 키우면서 살까?"


그래,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쳤지만 남편이 제안한 귀농이 연금을 타게 될 나이 언저리쯤일 거라는 생각에 심드렁하게 긍정의 대답을 다.


그 당시 는 둘째 아이를 입학시킨 후 나의 일을 찾아서 하고 있었고, 나름 전문가의 길을 걷기 위해 대학원 공부를 더 해볼까 고민하던 중이었기에 남편의 제안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실효성도 없어 보였.

도시에서 나고 자라 풀 한 포기 심어 본 적 없는 남편과 가 시골에 가서 무얼 할 수 있겠나 싶었고, 설마 당장 가자고 하겠는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남편은 TV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방송에 나온 그 농장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고 열심히 무언가를 찾았다.


"나, 공주에 가서 일 배울라고. 당신도 같이 가볼래?"


그러다 말겠지라는  생각과 달리 남편은 진지했다.

귀농교육을 진행하는 한 학교의 도움을 받아 취업하며 실무를 배울 수 있는 농장을 섭외했다며 같이 가보자고 했다.

그 당시 남편은 부동산 일을 하고 있었다.

경기 좋지 않아 실적이 저조했던 것도 있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심으며 하고있는 일에 염증을 느끼고도 있다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 것을 무조건 반대할 수만도 없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3시간 가까이 놀러 가듯 아이들을 데리고 닭을 키우는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 사장님을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수입 부분과 닭을 키우는 노동의 강도, 주의할 점, 앞으로의 전망 등등을 물어보며 귀농 가능성에 대해 타진해보았다.

이것저것 묻고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귀농 후의 삶에 대해 본인이 그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은 6개월 간 그 농장 사장님을 멘토로 삼아 일을 배우겠다며 정말로 짐을 싸서 공주로 내려갔.

설마라고 생각했던 일을 남편은 추진했고, 실행에 옮겨버렸다.

초등 4학년, 2학년 두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고, 일하며 생활비도 감당해야 하는 나를 두고서. 


그런데, 는 그때까지만 해도 귀농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6개월 일을 배우고 남편이 돌아온다 해도 정말 귀농을 하겠나 싶었다.

굳이 귀농을 하겠다면 나와 아이들은 도시에 남아 나는 나대로 하던 일을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생활을 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시골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몇 년간 터전을 닦아 놓으면 그때 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


우리 가족은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들을 잘 해내며 6개월을 보냈다.

생전 해보지 않던 시골일에 얼굴이 까매지고, 몸이 야위어진 채로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 남편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리고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남편이 꿈꾸는 귀농의 미래를 함께 그기보다는 나는 내 미래를 계획하여 하나씩 추진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자신의 결정을 더욱 확고히 했고, 함께 내려갈 의사가 없는 를 설득하며 귀농의 계획을 구체화해가기 시작했다.

현실성 없어 보이던 귀농이 현실화되면서 는 적극적인 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섰고, 남편은 더욱더 치열하게 귀농을 강요다.


우리의 귀농은 그렇게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매일 싸우는 나날 속에 표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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