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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맘 Jun 11. 2021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니면 어때? (1)

어쩌면 정답은 공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 나 공부 때려치우면 안 돼?"


중학생도 아닌, 초등 1학년의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공부를 그만하고 싶다'도 아닌, '때려치우겠다'니 가당키나 한 말일까 싶었다. 게다가 초등 1학년. 이제 막 학교 다니는 일이 재미있어도 모자랄 그런 나이고, 이제 막 공부에 첫 발을 디딘 시점이 아닌가?


"공부 안 하면 나중에 뭐가 될 건데? 공부 안 하고 이 세상 살아갈 수나 있을 것 같아?"


이 말을 툭, 뱉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다그쳤다. 명색이 학원 강사랍시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10년 넘게 업으로 삼고 있는 나였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가 좋은 성적을 내서 보란 듯이 좋은 대학을 가 자랑거리가 되지는 못할 망정, 초등 1학년부터 공부를 때려치우다니! 아이의 이 한 마디가 내 이력에 빨간 불을 켜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는 없었다. 내가 학원 강사였기에 이런 아이들이 학원에 다닐 경우의 부작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가방만 메고 덜렁덜렁 시간을 죽이러 다니는 아이들로 학원 월세나 전기세를 채워주러 가는 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 천천히 가보자.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느긋해져 보자. 조급함을 내려놓고 아이의 템포에 맞춰보자. 매일 아침 영어 흘려듣기 10분, 하교 후 수학 학습지 2장, 책 읽기 매일 30분 등과 같이 부담되지 않을 수준의 스케줄을 짜 놓고 그날 해야 할 공부를 끝내면 맘껏 놀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아이는 이 정도의 가벼운 학습 스케줄마저도 버거워했다. 엄마의 불호령이 무서워 겨우겨우 하는 시늉을 했을 뿐이었다. 저녁에 그날 해 놓은 문제집을 채점하면 맞은 문제를 세는 것이 더 빠를 만큼 아이의 학습 성취도는 형편없었다. 내 방법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는 도통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이 녀석이 나중에 무엇이 될 건가 싶어 걱정되었다. 학력과 인맥이 중시되는 이 사회에서 공부 못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사람 구실이나 하게 될까 염려스러웠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하는 사람 구실이란 4년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는 못하더라도 건실한 중소기업이라도 취직해서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타는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공부 못하는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살살 달래도 보고, 혼도 내보고, 매도 들어봤다. 좋아하는 물건을 목표로 제시하고 유도해보았으나 그때뿐, 공부에 대한 소질은 없어 보였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그래도 기초 학력은 쌓아야 하지 않겠니? 지금은 공부가 정말 하기 싫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공부에서 손을 놓으면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다시 시작하려 했을 때 기초가 하나도 없어서 아예 엄두조차 안 날 수 있거든. 아무리 못해도 중간은 유지해야 해."


적어도 중간은 가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중위권 성적이라도 유지해야 한다고 늘 말했지만 아이는 자기가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오히려 느긋했다. 아이가 꿈꾸는 미래가 궁금했다. 아니, 꿈이나 꾸고 사는지 아이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나중에 너는 뭐가 되고 싶은데?"


"그냥. 뭐....... 생각 없는데......"


아니 뭐 이런 무책임한 대답이 있을까. 나중에 뭐가 될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니.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그냥 의미 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15살. 남보다 뛰어난 재능도 하나 없고, 사회성이 좋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며, 공부도 별로인 그런 평범한 아이가 내 아이라니. 너의 작은 행동 하나에, 말 한마디에 혹시 천재는 아닐까? 착각하며 아이를 키웠던 시간들이 허공에 흩어졌다. 말은 "니 인생 네가 사는 거지,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내가 사는 건 아니니까 잘 생각해봐.'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먹구름이 드리운 듯 아득한 걱정이 몰려오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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