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어린이집에서는 수시로 아기들이 키울 식물과 곤충을 집으로 보내주신다.
다만 봄에 보내준 분꽃은 응애가 들어 사망하시고 장수하늘소 애벌레도 더위를 이기지 못해 사망하셨다.
그리고 남은 달팽이 한 마리.
더위에 돌아가실까 싶어 시원한 상추를 늘 두 장씩 공급해주다가 요 며칠 너무 더워서 키우는 집의 문을 닫지 않고 쪼끔 열어두었다.
하루 이틀 열어두고 퇴근 후 봐도 늘 그 자리이길래 삼 일째도 내버려 두었는데 어제 퇴근하고 보니 가출해 버렸다.
가출 달팽이의 소재를 찾고자 수소문하던 차, 자세히 보니 새로 나온 스파트필럼 새순이 몽땅 뜯겨 나가 있네.
이놈을 추포 하기 위해 스마트폰 헤드라이트를 켜고 베란다 화단을 샅샅이 뒤졌는데 화분이 많아 현장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원래 오늘은 퇴근하고 가족들과 짜장 천국에서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만사 제쳐두고 달팽이 압수수색차 화분을 드러낸다.
새순을 갉아먹은 범죄현장을 따라가다 보니 베란다 귀퉁이 찬 벽체에 몸을 반쯤 붙이고 반은 흙속에 몸을 감춘 녀석이 보였다.
긴급 체포 후 가택연금을 집행했으나, 난 짜장 외식하러 가는데 넌 방콕 하라는 게 좀 불쌍해서 상추 세 장을 깔아준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이 녀석이 아기 주먹만 해지면 씨를 뿌리겠다고 깊은 땅속을 찾을 텐데 걱정이다.
씨를 뿌리게 하자니 그 식솔들을 키우기가 쉽지 않고 씨를 못 뿌리게 흙을 주지 않으면 수년 전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자 단식으로 맞서다 아사하신, 달팽이 고 얄리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된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대한민국 청춘들의 결혼과 육아의 고충을 느껴보라고 우리 아기들에게 달팽이를 선물하셨는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