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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가 오타쿠를 낳았다.

by 꼼지맘

"덕질을 할 거면 제대로 해"

내가 나의 딸을 키우면서 종종 했던 말이다.



나는 역사를 드라마로 배웠고, 스포츠룰과 서양복식역사를 만화로 배웠다.

시험기간에 공부로 밤을 새우기는 힘들어도 만화책을 보면서 밤새우는 스킬을 익혔다.

자연스럽게 교과서의 귀퉁이에 낙서를 하다 화실을 다니고, 미대를 갔다.

만화를 그리기는 자신이 없어 캐릭터를 그렸다.

나의 캐릭터를 그리다 게임회사의 캐릭터 개발과 문구디자인의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나의 첫 직업은 캐릭터를 그리는 문구디자이너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싫어하고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서 동화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좋아하는 그림책은 신데렐라, 백설공주, 101마리 달마티안등의 디즈니그림의 동화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동화책의 주인공인 공주와 왕자보다 신데렐라의 쥐와 호박마차, 종달새등을 좋아했고, 백설공주의 7 난쟁이를 좋아했다. 101마리의 달마티안에서는 달마티안과 동물친구들을 좋아했었다.


덕질의 시작

청소년이 되어서는 일주일마다 동생과 목욕탕을 갔다.

엄마가 무조건 보냈다. 처음엔 싫었지만 내가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일요일이면 늦잠을 자고,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간다. 그리고 늦은 저녁에서야 집에 왔다.

가기 싫어했던 목욕탕은 2층이었고, 1층에 만화방이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이유는 목욕탕이 아닌 만화방이었다.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빨개진 얼굴로 만화방에 갔다.

그렇게 나의 덕질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만화작가들이 생겼고, 만화를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나의 낙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지금도 낙서하기를 좋아한다.

한때는 나의 낙서들로 밥벌이를 했었다.

지금도 그 낙서의 연장들이라 생각한다.


당시 만화책과 만화방은 청소년들에게는 금지해야 하는 음지의 문화였었다.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면 마음한구석에 죄책감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부모님은 나의 문화생활에 별말씀은 없었고, 나의 늦은 귀가에 걱정을 하시는 정도였다.

지금도 부모님의 교육관은 감사하다.

내가 어떤 것들을 해도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고, 단지 내가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대부분의 것들을 할 수 있었다.


토토로를 만났다.

게임회사에 입사를 위한 면접을 보기 직전 나는 포트폴리오를 분실했다.

게임회사에 면접을 보며 함께 제출하는 포트폴리오로 나의 친구들이 '낙서장'이라고 말했던 평상시 낙서와 습작들을 그리는 노트를 가져갔다.

나는 여전히 오타쿠로 열심히 덕질을 하고 있었다.

게임회사에 무조건 붙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포트폴리오를 잃어버려 다른 직장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다행히 합격을 했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할 때라 " 경쟁이 약했나 봐, 나 붙었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입시한 시기는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해였다.)


경쟁률 40:1

첫 출근일 알았다.

경쟁률이 40:1이었다는 것을... 따라오는 질문은 '내가 왜 붙었지?'였다.

40:1의 경쟁률을 뚫고 첫 출근을 한 사람은 나를 포함 2 사람이었다.


"포트폴리오가 대단했다던데.."

"저도 들었어요. 엄청난 실력자들이라고 대표님과 실장님이 말씀하시던데"

"작품들 보여줄 수 있어요?"

나와 나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분에게 작품을 보여달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옆 남자분이 쑥스러워하며 모니터에 작품들을 띄웠다.

헉! 대단한 실력자다. 게임캐릭터에서 중요한 귀엽고 예쁜 소녀그림이다.

어떤 게임의 캐릭터를 개발할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림이다.

'이분도 오타쿠구나. 나와 장르가 다른...' 하는 생각을 했다.

멋진 포즈의 소녀들과 인사를 마쳤다.


"실장님이 이번 신입은 예쁘고, 귀엽다고 했는데, 남자분이 예쁜 거였어, 그럼 귀선 씨는 귀여운 거?"라고 하는 말에 소녀그림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왔다.

"네 그런 거 같아요. 저... 지금 보여드릴 게 없어서요"

"뭐 지금부터 매일 볼 건데 괜찮아요.. 환영해요"라고 하며 신고식이 끝났다.


당시에는 내가 합격한 이유가 한참 동안 의문이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해가 된다.

나의 합격은 오타쿠로서의 진정성 있는 나의 덕질 흔적들이 담긴 '낙서장'이 합격의 키포인 트였을 거다.


덕질에도 수준이 있다.

게임회사에서 오타쿠로서 덕질의 수준을 높였다.

나의 파트너인 프로그래머는 고졸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의 나이는 21살이였다.회사에서 가장 어렸다

나의 파트너는 게임으로 덕질을 했고, 고등학생 때 게임을 개발했고 상을 받았다.

오타쿠로서 덕질에도 레벨이 있다. 나는 스승을 잘 만났다.

목욕탕건물 1층 만화방이 나의 덕질의 전부였던 나에게 나의 파트너는 홍대에서 덕질을 위한 장소들을 소개해주었다.


미야자키하야오와 토토로를 만났다.

수입만화서적을 비롯한 다양한 게임과 일본에니메이션들 이곳이 우리 게임개발자들이 가는 시장조사자료들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팀전체가 시장조사를 나갔다.

오락실과 만화도매점에서 새로 나온 게임을 하고 놀았다. 그게 우리의 일이었다.

내가 다니는 게임회사의 자료실에는 다양한 일본만화원서들과 일본어로 된 애니메이션과 원화집들이 있었다. 오타쿠가 당당하게 덕질을 할 수 있었다.

덕질을 잘해야 일을 잘할 수 있었다. 나는 미야자키하야오의 토토로를 만났고, 나의 오타쿠로서의 덕질은 정점을 찍었다.


오타쿠가 아이를 키우는 법

나는 연년생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영어비디오와 교육방송대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리즈를 보여주며 키웠다.

거실벽에 커다란 벽화를 그려주었다. 토토로와 친구들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리즈들을 거의 모든 작품을 보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비롯한 디즈니시리즈 등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오면 우리 가족은 가족모두 함께 영화관으로 간다.


오타쿠가 오타쿠를 낳았구나.

언제부터인가 막둥이가 일본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친구와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대만출장에도 동행을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기사님과 열심히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버스기사님이 일본어가 가능해서 막둥이가 일본어로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어 실력이 꽤 좋은듯했다.

"제 일본어 실력이 엄마 생각보다 더 잘 할 거예요"라고 한다.


막둥이는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없다.

중학생 때 밤을 새워 일본에니메이션을 보았다. 지금도 열심히 보고 있다.

어느날, 매일 밤을 새우던 중학생시절 막둥이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내가 시험공부 안 하고 일본만화 보는 거 혼 안내요?"

"공부하라고 혼냈으면 좋겠어? 덕질도 열심히 하면 실력이 되다고 생각해. 덕질에도 수준이 있어.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대신 덕질을 할 거면 남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열심히 덕질해. 덕질이 네 실력이 될 수 있게"


나는 이 말을 한 덕분에 아이들이 하는 게임과 늦은 시간 일본에니를 보는 것, 만화책을 보는 것, 소설을 읽는 것 등에 관대한 엄마가 되어야 해서 한동안 속앓이를 하며 후회한 적도 있다.


오타쿠는 독학 스킬이 높습니다.

막둥이는 일본에니를 보며 일본어를 하게 되었고,

프랑스 에니메이션을 덕질하면서 영어를 공부했다(프랑스 에니의 한국어가 없어 영어로 봐야 했다)

VR게임을 하면서 가상현실에서 영어회회를 연습했다.

(막둥이는 영어교육은 초등 2학년 겨울방학 때 알파벳을 배우면서 시작했고, 초등 3학년부터 학교방과 후영어를 다녔고, 마지막 레벨을 3번 반복하고 영어학원을 2년 정도 다니고 끝이었다. 이유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영어학원에 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막둥이가 하고 싶은 것은... 그림 그리기, 일본에니보기, 웹소설 읽기 등이다)


웹소설에 덕질을 하다 읽고 싶은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을 기다리는 구독자들이 작가님이라 부러던 때가 중2였다.

게임덕질을 하며 게임 속 캐릭터의 성장모습을 보고 싶다며 그림을 그렸다.

막둥이는 게임을 기획하는 디랙터가 되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그래서 게임도 당당하게 한다. 게임분석을 위해서...

우리집에는 막둥이가 게임하는 시간이 있다.



4월 일본출장이 있다.

보호자겸 통역으로 막둥이를 데려간다.

일본어를 공부해야겠다며 켜는 것은 일본에니메이션이다.


우리집에는 오타쿠가 있다.

우리집 오타쿠들은 집을 좋아한다.

혼자서 할게 너무 많아 외출은 큰맘 먹고 해야한다.

오늘 막둥이는 몇년동안 소통했던 게임친구를 처음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

만나는 친구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 이번에 다시 수능을 봤다고 했던것 같다.

공부하느라 1년동안 게임을 쉬었다고 했다.

우리는 막둥이의 게임친구들을 특징으로 부른다.

막둥이의 친구들은 국적도 다양하다.

(수의사, 박사, 1000시간 중국애, 전주댁, 군인등등... )

우리집에서는 몇일전부터 막둥이의 외출이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다.

막둥이는 오랜만의 외출이라 어떤옷을 입을지, 어떤곳을 갈지, 어떤음식을 먹을지 고민을 한다.

오타쿠에게는 가벼운 외출도 특별한 일상이다. 그래서 더 즐겁고 설레인다.

엄마인 나도 그러니까^^









오타쿠 ㅣ (otaku) ㅣ 명사

만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한 분야에 마니아 이상으로 심취한 사람을 이르는 말.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일본 문화에 전문적으로 깊이 빠지고 사회에 폐쇄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예시:그는 만화란 만화는 모두 다 섭렵한 오타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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