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은 연말편지로
늪과 삶
적당한 행운과, 견딜만한 고난과, 잔잔히 깔린 행복,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고독이 인생이란 생각을 한다. 처음 이 땅에 발을 딛은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 날은 유난히 기차에 사람이 없었고, 온통 빨간색으로 덮힌 인테리어는 어색했다. 곁에는 엄마 아빠가 있었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받았고, 그 맘을 하늘은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뜬금없는 비가 왔더랬다. 날씨 앱을 켜서 서울과 기온을 비교했다. 서울이 훨씬 더 춥다고 적혀있었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난 서울에서 느껴보지 못한 스산한 공기를 내 손으로, 얼굴로, 마음으로 느꼈다.
우울의 씨앗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뻗어나가는가, 에 대해 많이 배운 올 한 해. 그 열매는 무기력이고 애초부터 시들어있다. 시든 열매와 나뭇가지를 쳐 내는 것은 정원사가 된 도리이지만, 무기력의 오묘한 연기가 온 몸을 파고들어 결국 들었던 가위를 놓게 되곤 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공식은 우울은 고독으로 변환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고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 대신 그 변환을 원한다면 엎어져 있는 제 자신의 몸뚱이를 제 힘으로 일으켜야 한다는 점.
이번 주에는 첫 눈이 온다고 한다. 마트에는 어드밴트 캘린더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고, 길거리에는 반짝이는 불빛들이 수를 놓고 있다. 잊을만 하면 크리스마스는 돌아오는 것 같다, 꼭 철새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 마냥. 그런 걸 보면, 삶이란 배터리가 나갈때까지 돌아가는 오르골 같기도. 언뜻 들으면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정이 흔들리고 발레리나의 움직임이 뻣뻣해지는 그런 당연한 현상. 내 오르골에서는 지금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까. 적당히 흔들리는 멜로디에 우아한 턴을 도는 발레리나. 그런 오르골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다.
겨울이 왔다. 코 끝이 찡하고 손가락 끝이 빨개지는 그런 계절. 올해 2월, 처음 오스트리아에 왔을때, 이곳의 겨울은 서울보다 스산하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허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어떤 서늘함이 내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걸까. 이번 겨울은 어떠려나.
모두에게 따뜻한 겨울이 되면 좋겠다만, 저마다의 온도계는 각기 다르기에,
다만, 한 가지 제멋대로인 청이 있다면
그저 차갑기만 한 겨울은 아니었으면.
찰나의 차가운 폭설 뒤엔, 그걸 다 녹일 수 있는 따스한 햇빛이 당신에게 찾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