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의 모순적 아름다움
1
오륙도가 내려다 보이는 해맞이소공원 주차장 앞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주차를 관리하는 분인지 교통 통행을 관리하는 분인지 한 분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 소리를 치고 있다.
"차 좀 빼세요. 뒤에 차가 밀려있는 게 보이지 않습니까?"
운전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아마도 해맞이소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만차라 들어갈 수가 없어요. 빨리 차 빼세요."
운전자가 차를 빼지 않자, 화가 더욱더 난 관리자는 만차 표지판을 입구 가운데 놓고 그 앞에 펄썩 주저앉아 씩씩거리며 절대 비켜줄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오륙도해맞이소공원에 주말이면 차가 많이 밀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평일인데도 이렇게 차가 밀려 주차 공간이 부족한 것은 수선화 때문이다. 거제 공곶이 수선화밭이 유명하다지만, 부산에서는 오륙도해맞이소공원에 가야 제대로 수선화를 볼 수 있다. 그리 크지 않은 네댓 개의 구획이 조그만 수선화밭으로 가꾸어져 있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이외에 다른 수선화밭을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수선화 몇 포기씩 피어 있는 정원이나 마당을 꽤 있지만. 더구나 파란 바다와 오륙도를 배경으로 수선화가 무리 지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2
수선화(水仙花)는 말 그대로 표현하자면 '물의 신선', 또는 '물의 요정'이라고나 할까? 수선화가 물가를 좋아한다는 말일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호수가를 따라 줄지은 듯 끝없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수선화 무리를 보고 '수선화'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산골짜기 넘어서 떠도는 구름처럼
지향없이 거닐다
나는 보았네
호수가 나무 아래
미풍에 너울거리는
한 떼의 황금빛 수선화를
은하에서 빛나며
반짝거리는 별처럼
물가를 따라
끝없이 줄지어 피어 있는 수선화.
무수한 꽃송이가
흥겹게 고개 설레는 것을.
주위의 물결도 춤추었으나
기쁨의 춤은 수선화를 따르지 못했으니!
이렇게 흥겨운 꽃밭을 벗하여
어찌 시인이 흔쾌치 않으랴
나를 지켜보고 또 지켜보았지만
그 정경의 보배로움은 미처 몰랐느니.
무연히 홀로 생각에 잠겨
내 자리에 누우면
고독의 축복인 속눈으로
홀연 번뜩이는 수선화.
그때 내 가슴은 기쁨에 차고
수선화와 더불어 춤추노니.
3
수선화를 '나르시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물 위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물가를 떠나지 않고 한없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죽은 후 그 자리에서 핀 꽃이 라 하여 그의 이름을 따 '나르시스'라고 부른다. 역시 수선화는 물가에 피는 물을 좋아하는 꽃인 게 분명하다.
소공원에서 수선화를 찍다 보니 이 꽃들 대다수가 바다를 향해 나팔을 불듯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은 사람이 그 방향으로 꽃이 바라보도록 심은 것은 아닐 텐데, 왜 바다를 향해 있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아마도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수분이 날아드는 바다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는 수선화는 햇빛을 좋아하는 양지식물인지라 남쪽을 향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수선화는 남해와 동해를 갈라놓은 오륙도 바다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4
수선화를 모순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단순, 소박, 수수한 아름다움이 고고, 고결의 아름다움과 양립해 있는 것이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도취, 자존심, 고결, 신비, 새로운 시작'인데, 나르키소스의 아야기에 따르면 왜 꽃말이 자기도취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선화는 하나의 꽃대에 여섯 꽃잎의 한 송이 꽃이 달린다. 그 꽃대는 꼿꼿한 자존심을 보여주듯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순수한 노란색 여섯 꽃잎이 단순한 형태로 피어있고, 또한 잎새도 군더더기 없는 아주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피아노 위를 달리는 소녀의 긴 손가락처럼 아무 장식이 없는 초록색 잎이 쭉 뻗어있다. 수선화는 노랑꽃과 초록색 잎의 단순한 색과 형태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소박하고 수수한 모습, 또 달리 보면 고고하고 고결한 모습, 이 둘의 서로 모순되는 듯한 이미지가 수선화 속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꽃말이 신비일지도 모른다.
5
수선화를 처음 보았던 때를 떠올려 보자면, 참 오래 전이었다. 사실 그때는 그 꽃이 수선화인지도 몰랐었다. 아마 중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은데, 영화 '닥터지바고'에서 수선화를 처음 보았었다. 볼셰비키 혁명 후 자유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던 지바고는 반동으로 몰려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은 도시를 떠나게 된다. 아내와 장인을 데리고 우랄산맥을 넘어 장인의 옛 영지였던 바르키노로 도피한다. 그들이 탄 기차는 철길에 쌓이 눈을 헤치며 겨울 들판을 여러 날 달린다. 바르키노에 도착한 지바고 일행은 주위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혹한의 겨울을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 추운 지역에도 봄은 찾아든다. 눈으로 덮였던 바르키노의 들판에는 봄꽃이 만발한다.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에 노란 수선화가 끝도 없이 피어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수선화 무리의 장관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꽃이 수선화였다는 건 한참 뒤에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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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원을 지나가는 어떤 분이 일행과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이 소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에 산다면, 이 수선화를 보러 온 사람들을 보며 웃을 것이라고. 뭐 볼 게 있다고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냐고. 하긴 대단한 수선화밭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리 대단한 장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선화는 자신의 수수함과 고결함이 중첩된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고 있다. 두 구획 정도의 유채꽃이 빛을 잃을 만큼 수선화는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노랗게 빛난다. 3월 말까지는 바람이 불면 바다의 파란 물결과 바람에 춤추는 수선화의 노란 물결의 일렁임을 보며 봄의 위안을 느껴 볼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