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줄 놈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프루스트의 전형적인 글쓰기는 전혀 전형적이지 않다.

by 아이언맨

마르셀은 할머니와 발베크에 휴양 여행을 간다. 그곳 해수욕장 방파제에서 꽃처럼 싱그러운 소녀들의 무리를 보고서는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중 엘스티르가 그 소녀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 소녀들에게 소개를 받게 되기를 희망한다. 아니 나름 머리를 굴려 작전이란 걸 시도한다. 먼저 엘스티르와 함께 그 소녀들이 자주 출몰하는 해변 지역을 찾아간다. 그리고는 출몰 확률이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는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끈다. 하지만 해는 지고 있었고, 아무 성과 없이 돌아가야 할 상황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엘스티르와 함께 별장 쪽으로 갈 그때 앞 쪽에서 소녀들의 무리가 나타났다. 이때의 마르셀의 심리와 행동 묘사는 프루스트의 글쓰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그녀들과 우리 사이의 만남이 불가피하다고 느끼면서, 또 엘스티르가 날 부르리라고 예상하면서, 난 마치 파도를 받아넘기려는 해수욕객처럼 등을 돌렸다. 나는 갑자기 길을 멈추고는, 나의 저명한 동반자가 계속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고 뒤에 처져서는 그 순간 우리가 지나가던 골동품 가계 진열창에 갑자기 흥미를 느끼기라도 한 듯 몸을 기울였다.


( 결정적인 순간을 회피하는 듯한 마르셀의 모습, 왜 그랬을까? 우리 모두가 이전에 비슷한 행동을 했던 때가 있을 것이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닐 수 있다. 어쨌든 이때의 마르셀의 심리는...)


소녀들에게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척해 보이는 게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엘스티르가 날 소개하기 위해 부를 때, 놀란 것이 아니라 짐짓 놀라는 척해 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일종의 묻는 듯한 눈길로, 또 손가락으로는 내 가슴을 가리키며 "당신이 부른 사람이 바로 난가요?"라고 물으면서, 알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소개되느라 옛 도자기 감상을 방해받았다는 듯 짜증이 묻어나는 걸 냉정하게 감추고는, 복종과 온순함으로 머리를 굽히고 재빨리 달려가리라는 걸 나는 이미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교묘한 묘사는 소름 돋는다. 마르셀은 소녀들에게 소개되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녀들에게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 소개받는 건 아주 하찮은, 어쩌면 할 일을 방해받아 좀 짜증이 나는 일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만, 그래도 그걸 숨기고 재빨리 달려가서 소개를 받는다.??? 달리 나의 필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동안 나는 진열창을 주시하면서 엘스티르가 소리 높여 부르는 내 이름이 마치 우리가 기다리는, 별로 위험하지 않은 공처럼 날 때릴 순간을 기다렸다. 소녀들을 소개받는다는 확실성이 그 결과로써 소녀들에 대한 무관심을 가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녀들을 알게 되는 기쁨을 피할 수 없게 된 지금 그 기쁨은 압축되고 축소되어, 생루와 이야기하거나 할머니와 저녁 식사를 하거나, 근교에서 즐기는 소풍의 기쁨보다 더 하찮게 생각되었고, 틀림없이 역사 기념물 같은 것엔 관심도 없을 그녀들과의 친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풍도 소홀히 해서 후회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들을 알게 된다는 것이 확실해지면서, 오히려 마르셀의 기쁨은 작아지고, 오히려 평범한 일상이 그녀들과의 만남 때문에 방해받는 상황을 걱정하기에 이른다. 확실성 후에 닥치게 될 불확실성이, 이미 확실한 기쁨으로 확정된 사실들을 교란시킬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서 김치국물을 마셔도 너무 마시고 있다. 마르셀은 단순한 놈은 아닌 것이다. 아주 복잡한 놈이다.)


게다가 내가 맛보게 될 기쁨을 작아지게 한 것은 실현이 임박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비일관성이었다. 정수역학의 법칙과도 같은 정확한 법칙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우리가 형성하는 이미지를 쌓아 올리다가 사건이 임박해지면 그 순서를 전복시킨다고 한다.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냄새가 난다.?)


엘스티르가 나를 부르려고 했다. 소녀들을 알게 되는 장면을 해변이나 내 방에서 몇 번 상상해 본 적은 있지만 이런 방식은 전혀 아니었다. 지금 일어나려고 하는 것은 내가 전혀 대비하지 못한 다른 사건이었다. 나는 내 욕망도 목적도 알아보지 못했다. 엘스티르와 외출한 게 거의 후회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전에 내가 느낄 거라고 믿었던 기쁨이 줄어든 것은 이제는 그 무엇도 내게서 그 기쁨을 빼앗지 못하리라는 확실성에서 비롯했다.


(마르셀 이 놈은 떡을 먹지도 않고서 배가 부른 놈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 상상 속에서 떡을 잔뜩 처먹고는 배가 불러서, 떡을 주려고도 않을 사람에게 떡을 주었다고 욕을 하려 드는 그런 놈인 것이다. 마르셀은 처절한 응징을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기쁨이 이런 확실성의 압박에서 벗어나 탄력적인 힘 덕분에 본래 높이를 되찾은 것은, 내가 고개를 돌리려고 결심한 순간,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소녀들과 함께 멈춰 서 있는 엘스티르가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엘스티르는 나를 부르지도 않은 채, 이미 소녀들 옆을 떠났다. 소녀들은 지름길로 들어섰고, 그는 내게도 왔다. 모든 게 어긋났다. "


(상상 속의 확실성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나 바라고 바라던 만남이었건만, 한 순간의 불확실한 확실성에 미혹되어 딴청을 부리던 마르셀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멋진 반전, 유쾌한 한 방, 물론 마르셀에게는 유쾌하지 않았겠지만. 확실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깊은 통찰, 삶과 인간의 심리에 대한 깊은 성찰 등, 이 짧은 에피소드 안에 가득 들어 있는 프루스트 글씌기의 진면목에 감탄이. 사실 이 이야기 속에는 프루스트의 예술을 보는 시각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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