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을 감당하는 인간이란?

그 책, 그 문장/알베르 카뮈, 《이방인》

by 아이새

우리는 시선을 떨구지 않은 채 마주 보고 있었으며, 모든 것이 여기, 바다, 모래, 태양, 그리고 피리 소리와 물소리가 자아내는 이중의 침묵 사이에 정지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권총을 쏠 수도 있고 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민음사, 74p.



대학 시절 처음 이방인을 읽었고, 그 뒤로도 시간이 허락하면 수시로 읽었다.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소설 중의 하나이다. 무엇이 그토록 오래 나를 매료시켰을까? 처음 책을 구입하고 표지에 찍힌 알베르 카뮈의 잘생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는 평소 미남을 질투했었지만 카뮈에게는 별로 반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은 너무 재밌어서 충격적이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부터 살인과 재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성이나 주제도 너무나 흥미진진했지만, 무엇보다 주인공 뫼르소의 투명한 서술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또 등장인물들도 모두 애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나는 특히 레몽이라는 인물에 매료됐다. 파렴치한 인간이지만 자신의 감정과 삶에 솔직한 인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뫼르소의 애인인 마리도 좋아했다. 너무나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여자였다. 나는 심지어 살라마노 영감과 그의 병든 개까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소설이 재미있었던 것과는 별개로, 나는 위에서 인용한 문장을 읽는 순간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위의 장면은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 아랍인들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이후 홀로 바닷가로 나섰다가 다시 한번 아랍인들을 마주친 뫼르소는 결국 살인을 하게 된다.

내가 저 문장을 읽다가 느낀 이상한 감정은 “권총을 쏠 수도 있고 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 실제로 매 순간 벌어지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내가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가능성, 결과, 책임, 죄악 등등이 각각 다른 형태로 펼쳐지게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린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압도적인 자유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순간순간이 칼날 끝에 서 있는 꼴이라고 느껴졌다. ‘권총을 쏜 세계’와 ‘권총을 쏘지 않은 세계’, 그것은 검지에 가해지는 미세한 압력의 차이지만, 완전히 다른 우주를 탄생시키는 셈이다.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를 건넬 때마다, 내가 길을 선택할 때마다, 내가 책 한 권을 집어들 때마다 잠재성의 바다에서 단 한 번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 건져 올려진다고 상상해 보자. 나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동시에 희열이었다.


이 세상에는 어떠한 불변의 법칙도 없으며,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문학 장르가 ‘부조리 문학’이다. 따라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부조리 문학 속 주인공은 보통 혼란을 겪으며 현실에 대해 냉소할 뿐이다.

하지만 카뮈는 포기하지 않는다. 부조리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을 칭송한다. 그의 대표작 《시지프 신화》에서 그의 부조리에 대한 철학이 잘 드러난다. 그는 신에게 벌을 받아 무의미하게 끝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를 패배자로 두지 않는다.

시지프는 신으로부터 영원히 돌을 굴려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이내 웃는다. 왜냐하면 시지프는 거꾸로 신을 농락하고, 상황을 전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형벌을 즐기는 것이었다. 신은 무의미한 노동으로 시지프에게 괴로움을 주려고 했지만, 시지프가 형벌을 즐긴다면 신은 절대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시지프는 스스로의 의지로 계속해서 돌을 굴려 올리고, 돌이 굴러떨어져도 절망하지 않는다.

카뮈는 그 웃음을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끝내 스스로를 긍정하는 인간의 미소”라고 말한다. 이방인의 뫼르소도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살인의 죄로 단두대 앞에 서면서도, 눈부신 태양과 세상의 냄새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