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 그 문장/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거장이 그림에 반영하는 자신의 연인은 궁극적으로 불완전함이나 결함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의 규범이 되지. 왜냐하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 거장을 모방하면서 거장의 연인과 똑같은 여인을 그리게 되기 때문이네.”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1권, 민음사, 120p.
오르한 파묵 작가가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얼마 뒤 대학교 앞 편의점에서 《내 이름은 빨강》을 구입했다. 요즘은 잘 보이지 않지만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웬만한 편의점에는 도서를 판매했다.
훌륭한 작품들을 많지만 《내 이름은 빨강》처럼 첫 장을 넘기자마자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작품은 드물었다. 흥미진진한 구성과 이국의 역사와 풍경 등등도 이유겠지만 외적인 요인도 있었다. 《내 이름은 빨강》은 당시의 내 개인적인 고민과 밀접하게 닿아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문체(writing style)에 관한 문제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글이 최종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문체라고 생각했다. 문체란 형성되어온 생각과 습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인상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의 문체를 가질 수 있는지 몰랐다. 표정을 꾸민다고 해서 인상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빨강》은 추리소설이다. 엘레강스라는 세밀화가가 살해당하고 주인공 카라가 누가 진범인지를 찾아내는 과정을 그렸다. 용의자는 모두 셋, 동료 화가 나비, 올리브, 황새였다. 카라는 이들과 접촉하면서 결국 진범을 찾아내게 된다.
카라가 단서를 찾기 위해 주목한 것은 것은 재밌게도 화가들의 그림과 예술관이었다. 이러한 독특한 접근 때문에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추리소설이어서 긴박하고 가슴 졸이는 재미를 느끼게 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이슬람 문화, 특히 이슬람의 미술 문화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 예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세밀화가들에게 가장 논쟁적인 화두는 스타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화가 개인의 스타일은 오류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누가 그린 것인지 구분 못 할 만큼 옛 거장의 그림과 똑같이 복제해 내는 사람이 대가인 것이다. 따라서 장님이 되어서도 완전히 똑같은 그림을 반복할 수 있을 정도로 손에 숙달을 시키는 것이 세밀화가들의 공통된 목표다. 하지만 한편으로 화가들에게는 반대쪽의 은밀한 욕망이 있다.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다. 그것은 자신의 스타일을 갖는 것으로, 오류를 욕망하는 꼴이 되고 만다. 세밀화가들에게 스타일은 죄책감과 쾌락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인 것이다.
이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유일신 사상 전반에 일어나는 일이다. 유일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신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신의 뜻대로 살기를 바란다. 신이 주인이 되고 개인은 종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아를 완전히 지워내야만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주체성은 본능이다. 데카르트 말을 변용하자면 생각하는 한 나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소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인공 카라라 세밀화가이자 용의자인 나비에게 스타일에 대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나비는 대답 대신 세 가지 이야기를 대신 들려준다. 그중 마지막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카즈빈의 왕에게는 외동딸이 있었다. 왕은 사후에 왕위를 물려줄 사위를 찾고 있었다. 그림을 사랑했던 왕은 세 명의 젊은 궁정 화가들에게 시합을 하게 했다. 그리고 우승자에게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첫째 화가는 대담하게도 몰래 그림 속 수선화 사이에 서명을 넣었다. 하지만 서명이 발각되어 중국으로 유배됐다. 두 번째 화가는 거의 완벽했지만 백마의 콧구멍을 약간 다르게 그렸다. 의도적이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스스로를 드러낸 꼴이 됐기 때문에 비잔틴 제국으로 추방됐다. 마지막 화가는 완벽했다. 옛 거장의 그림과 완벽히 똑같았고 왕의 사위가 되게 됐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 왕의 딸은 슬픈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의 그림을 보았지만 어디에도 자신의 흔적이 없으며, 따라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결혼식은 취소되었다.
나비의 이야기를 들은 카라는 혼란스러워하면서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세밀화가에게 스타일은 필요한 요소인지, 혹은 오점일 뿐인지 헛갈렸던 것이었다. 그러자 나비는 조금 의외의 대답을 한다. 위에 적힌 인용문이 바로 나비의 대답이다. 요약하자면 일반적으로 스타일은 오점이지만, 거장이 그리면 규범이 된다는 것이다.
알쏭달쏭하다. 예술은 딱딱하게 굳어진 사람들의 생각과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기능적인 숙달과는 거리가 멀다. 나비의 말에 따르면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 즉 진정한 예술 활동은 거장들만이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거장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기능적인 숙달에 의해서다. 즉 옛 스타일을 깨뜨리고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스타일을 내세우지 않고 옛 스타일을 모방하라는 것. 오묘한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