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별 Nov 12. 2021

시험을 볼 때 너무 긴장하는 당신에게

11월 11일의 악필 편지


저는 항상 시험 운이 나빴습니다. 그게 단순히 운이 안 따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긴장하는 탓에 준비한 만큼 실력 발휘를 못 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건 수능을 치고도 제법 나이를 먹은 후였습니다. 여전히 저는 쉽게 긴장합니다. 어려운 자리에 가게 되면 잔뜩 얼어붙어 있다가 상대방에게서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요.


제가 수능을 봤던 경험은 당신께 좋은 반면교사가 될 것 같아요. 저는 살면서 첫 수능을 볼 때 가장 많이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장에서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을 잔뜩 외워서 시험을 보러 갔었죠. 최대한 즐거운 생각만 하며 일부러라도 자주 웃어라, 밥은 조금만 먹고 달달한 간식을 자주 먹어라, 어려운 문제를 풀 때면 ‘나만 이 문제가 어려운 건 아니다’라고 생각해라…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국어는 그럭저럭 잘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학을 볼 때 답안지를 밀려서 썼죠. 상황을 수습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지만 너무 당황했던 저는 나중에 풀 생각으로 미뤄두었던 어려운 문제들을 모두 놓치고 말았습니다. 망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채로 안 넘어가는 점심 도시락을 억지로 삼켰더니 금방 체하고 말았습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영어를 풀었지만 듣기 문제는 거의 다 놓쳐 버렸고, 남은 과목을 풀 때 저는 녹초가 되어서 제대로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긴장하면 실수하고, 실수하면 긴장하고, 그래서 더 실수를 하고… 지금도 이런 악순환을 저는 이따금 겪곤 합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큰 문제는 제가 긴장을 쉽게 한다는 것 자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저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는 것이겠지요. 저의 긴장을 제가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용납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수능날 점심을 먹다 체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성격은 당신이 최선을 다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거예요.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라는 것은 그럴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자라왔다는 것이겠지요. 그게 이따금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뭐든 일장일단은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당신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라면, 그걸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수능때뿐 아니라 평생 당신을 지탱해줄 수 있을 거예요.



긴장한다는 것은 당신이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긴장을 잘 하는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씀해보시길 바라요. 정말 애쓰고 있어. 너는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구나. 지금의 노력이 언젠가는 분명히 빛을 발할 수 있을 거야, 라고요.

작가의 이전글 휴재 알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